북한의 노골적인 영해 침범에 이어 남북 경비전간의 교전상황으로 "햇볕
정책"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최대의 시련을 맞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15일 "과거처럼 냉전 일변도의 정책으로 가선 안되며
평화적으로 북한을 개방의 길로 이끌어야 한다"며 대북 "햇볕정책"엔
변함이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김 대통령은 또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해선 엄정하고 단호하게 대처할 것"
을 거듭 강조했다.

적어도 현 상황에서 햇볕정책의 궤도수정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드러났듯 "햇볕정책"의 허점은 군사적 강공책을
쓰기 힘들다는 점이다.

비록 정부가 햇볕정책의 기조를 "안보와 화해의 병행"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명확한 개념규정이 미흡했음이 드러났다.

특히 무력대치 상황에선 "햇볕정책"에 기초한 군사적 대안이 무엇이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군사적 충돌은 피하면서 북한의 무력도발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다소
모호한 입장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이번 사태의 발생 초기에 정부의 대응이 안일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들을 그대로 방관했던 것이다.

북의 침범 의도에 대해서도 "꽃게잡이 어선 보호"라고 의미를 축소하는데
급급했다.

정부가 북한경비정들을 강제로 밀어낸 시점이 사태 발생 후 4일이 지난
뒤였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침범행위에 대한 정부의 해석도 사태 초기엔 "영해침범"이 아닌 "월선"
이었다.

정부는 우리 해군이 북한 경비정들을 밀어낸 13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영해침범" "도발"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사태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에 대한 개념규정이
달라졌다는 것은 이번 사태에 대처하는 정부의 태도에 일관성이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더구나 북한의 도발이 베이징 차관급 회담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계산된
행동이라면 비료를 먼저 주고 이산가족을 나중에 협의한다는 "유연한
상호주의"는 설 땅이 없게 된다.

서해에선 북한의 도발이 이뤄지고, 동해에선 비료 실은 배가 북한으로
넘어가는 아이러니야말로 "햇볕정책"의 양면이자 부담이 아닐 수 없다.

< 이의철 기자 ec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