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조평통)은 16일 "남한측 인사들의 평양방문과
접촉을 잠정 제한 또는 중지한다"고 발표했다.

조평통이 이같은 성명을 발표한 의도는 무엇일까.

조평통 성명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오는 21일로 예정된 베이징 차관급 회담
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있는 점이다.

조평통은 성명에서 "북남 사이의 화해와 협력의 기운이 무르익어가고 당국
사이의 대화가 눈앞에 박두하고 있는 때 남조선의 도발이 일어났다"고 언급
했다.

일견 베이징 차관급 회담을 말하는 듯한 뉘앙스다.

그러나 결론은 "당분간 평양방문과 접촉을 제한한다"로 끝났다.

결국 북한은 이번 사태를 베이징 남북 차관급 회담과는 별도로 취급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번 성명을 발표한 조평통에는 남북 베이징 차관급 회담을 성사시킨
전금철 부위원장이 있다.

따라서 베이징 차관급 회담에 영향을 줄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예컨대 북한은 차관급 회담을 앞두고 "협상력 제고"와 "피해보상"을 위한
명분쌓기의 일환으로 이번 조평통 성명을 발표했을 수도 있다.

물론 북한이 회담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회담이 파행으로 흐를
우려는 크다.

북한이 긴급의제로 서해 교전사태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관심사인 이산가족 문제가 제대로 논의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정부는 이산가족 문제를 "최우선 의제"로 논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어떤
형식이든 서해 교전사태로 인한 긴장이 회담장에 반영될 것이 틀림없다.

조평통 대변인 성명이 단순한 엄포용일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서해상 충돌과 관련한 최초의 성명을 "판문점대표부" 명의로 발표
했었다.

그러나 이후 교전상황까지 발전한 군사적 상황을 "군사기관"이 아닌 "대남
선전기구"(조평통)를 통해 발표했다.

''엄포용'' 성명일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남북간 교전이라는 긴박한 상황을 내세워 북한주민들의 사상이완을 방지
하고 체제결속을 꾀하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건 서해 교전사태가 소강상태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일어난 조평통의 성명은 현재 방북중인 삼성그룹의 대북사업, 현대 남북
농구단의 북한 방문 친선경기 등에 암운을 드리우는게 사실이다.

특히 방북중인 삼성그룹 대북사업단은 정상적인 활동을 벌일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윤종용 사장을 단장으로 하는 삼성그룹 방북단은 16일 현재 평양에 체류중
이다.

조평통의 성명대로라면 삼성의 방북단은 북한내 고위관계자를 만나기 힘들
뿐만 아니라 평양에서 계속 체류할 수 있을 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기왕에 추진중인 금강산 관광사업등은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겠지만 신규
사업을 추진중인 기업들의 경우 차질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그러나 조평통의 성명에 "평양"과 "당분간"이란 용어가 사용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조평통이 "잠정적"으로 남북간 접촉의 중단을 선언하면서, "평양"이란 특정
지역을 거론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북한이 경협이나 회담 자체를 완전 파기하려는 의도는 아닐 것"(정부 고위
당국자)이란 기대섞인 전망도 이래서 나온다.

정부는 이르면 17일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북한측의 정확한 진의를
파악할 계획이다.

정부의 구체적인 대응도 북한의 명확한 의도를 파악한 이후에라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 이의철 기자 ec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