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영화는 대개가 엇비슷하다.

이야기 전개방식이나 결론이 그렇다.

삶의 역경을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 일궈낸 ''인간승리''의 모습을 그리는
게 보통이다.

어려웠던 시정을 느긋한 시선으로 회상하는 기법이 많이 쓰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19일 개봉되는 "푸줏간 소년"은 12살난 악동이 주인공인 성장영화다.

그러나 이야기의 흐름이나 결론이 여느 성장영화와는 딴판이다.

내면을 다지며 역경을 딛고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외부세계에 대한 적대감
으로 이빨을 드러내놓고 으르렁대는 어린시절의 단면을 쫓고 있다.

자신을 둘러싼 음험하고 차가운 시선에 대한 분노심을 못이겨 재앙덩어리로
변해가는 한 소년의 모습속에 현실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기성 도덕률과
손잡을 수 없는 순수와 자유의 정신 등을 블랙코미디로 담고 있다.

60년대초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프랜시는 전형적인 문제가정의 12살짜리 악동이다.

엄마는 툭하면 자살을 기도하고 아버지는 마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알코올중독자에 소심증 환자.

술취한 아버지의 매질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했다 돌아온 프랜시는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다.

단짝 친구 조와 짓궂은 장난을 즐기는 프랜시는 속물근성으로 가득한 누전트
부인의 약골 아들을 괴롭혔다는 이유로 그녀가 고용한 어깨들에게 위협
당한다.

프랜시는 자기를 밥만 축내는 돼지새끼라고 경멸하는 누전트 부인에 대한
응징에 나선다.

누전트 부인의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거실 카펫에 용변도 본다.

이로 인해 마을에서 추방되어 수도원으로 끌려간다.

프랜시는 수도원에서 성모 마리아의 성령을 접해 스타가 되지만 수도원장의
은밀한 성적 노리개감이 된다.

프랜시는 이를 폭로하겠다고 협박, 다시 마을로 돌아오지만 믿었던 친구
조에게조차 따돌림을 받는다.

프랜시는 모든 게 누전트 부인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아버지까지 죽어 혼자 남게 된 프랜시의 악행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영화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프랜시를 둘러싼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난도질한다.

누전트 부인과 수도원장의 모습을 통해 기성사회의 감춰진 편견과 욕망,
억압의 구조를 낱낱이 들춘다.

TV영상으로 비쳐지는 핵폭발의 위력, 환상속의 파리인간, 란제리를 걸친
성모 마리아 등의 모습은 삶속에 드리워진 공포와 혼돈, 희망으로 뒤죽박죽
섞인 프랜시의 내면세계를 상징한다.

프랜시 역을 맡은 소년배우 이몬 오웬의 엉뚱하고도 악의에 가득 찬 연기가
눈부시다.

"크라잉게임"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등으로 이름난 닐 조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장 뤼크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과 함께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꼽히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58년 데뷔작 "4백번의 구타"에 버금가는 작품이란
평가를 듣고 있다.

< 김재일 기자 kj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