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VTR에 얽힌 일화 한 토막.

한국 굴지의 대기업이 VTR 국산화 기념으로 청와대에 이를 기증했다.

한국선수와 외국선수가 복싱 세계 타이틀전을 벌이던 날이었다.

외국에서 국빈이 방문하는 바람에 생중계를 볼 수 없었던 박 대통령은
VTR 녹화를 지시했다.

문제가 생겼다.

4라운드까지만 녹화되고 VTR이 고장난 것.

고장 원인은 특수윤활제 대신에 일반윤활제를 사용한 때문으로 밝혀졌다.

산업계에 특수윤활제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때의 얘기다.

이후 특수윤활제 그리스(grease)를 수입해온 이 회사는 지금은 국산
그리스를 사용중이다.

장암상사의 구연찬(58) 사장이 개발한 윤활제다.

구 사장은 황무지와 다름없던 특수윤활제 시장의 개척자로 불린다.

81년 창업 이후 한우물만 판 덕에 그 결실이 나타나고 있다.

대우자동차는 수입해 쓰던 특수윤활제 7~8종을 전량 이 회사 것으로 사용중
이다.

현대자동차에도 작년부터 본격 공급에 들어갔다.

종전엔 부품업체를 통해 2종 정도 공급했으나 CV조인트용 등을 직접 납품
하는 등 공급 윤활제를 5~6종으로 늘렸다.

덕분에 자동차 특수윤활제 내수시장에서는 30%의 점유율을 차지하게 됐다.

특수윤활제 수입으로 사업을 시작한 구 사장이 본격적으로 국산화에 나선
92년 이전만해도 외산이 장악해온 이 시장에서 강자로 떠오른 것.

외환위기 이후 환율상승으로 외산의 가격이 높아진 것도 점유율 상승에
도움을 줬다.

불황도 이 회사의 성장을 가로막지는 못하고 있다.

매출이 97년 58억원,98년 45억원에 이어 올해 95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97년 7천9백만원을 낸 영업이익도 작년 3억원에 이어 올해에는 1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쓰이는 특수윤활제는 1백50여종(추정).

이 가운데 이 회사가 국산화한 것만 70여종.

연간 10여종을 개발해 오고 있다.

이는 특수윤활제를 쓰는 업체들의 원가절감으로 이어졌다.

VTR의 파워안테나 및 플라스틱 기어 등에 쓰는 특수윤활제의 가격은 kg당
1만5천원.

3~4년전만 해도 kg당 5만~6만원에 거래됐었다.

그는 서울시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반년을 넘기지 못했다.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성격 탓이었다.

대기업 무역부에 입사했으나 5개월만에 그만 뒀다.

한달에 한두번 외근하는 것으론 성이 안 찼다고 한다.

중소무역회사에 입사하면서 그는 물만난 고기처럼 뛰어 다녔다.

하지만 ''나이 40세에 내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6명의 직원과 함께 서울 서소문에 둥지를 트고 장암상사를 설립했다.

수요처가 너무 적어 고전했다.

울산 석유단지나 포철 등 1년 내내 기계를 돌리는 데서나 약간 쓸 뿐이었다.

가격도 일반윤활제의 10배에서 많게는 1백배여서 거래처 관계자들이 고개를
저었다.

"3만원이면 살 수 있는 윤활유를 왜 30만원 주고 삽니까"

특수윤활제에 대한 엔지니어들의 인식을 바꾼 사건이 터졌다.

캐나다에 국산 자동차를 첫 수출한 한 자동차 업체가 낭패를 본 것.

강추위로 와이퍼모터를 윤활하는 그리스가 얼어붙으면서 1년도 안 돼
판매가 중단된 것.

영하 60도에도 끄덕없는 특수윤활제에 대해 관심이 높아진 계기가 됐다.

96년부터는 흑자로 돌아섰다.

재무구조도 탄탄해졌다.

부채비율이 30%로 뚝 떨어졌다.

1백50여개 제조업체에 수입 및 국산 특수윤활제를 공급하는 이 회사는
동남아시장까지 개척하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수출이 1백만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및 한국화학연구소와 공동연구를 진행중이다.

외환위기가 한창인 작년에 기업연구소를 설립했다.

5년내 전세계 특수윤활제를 모두 국산화하고 2001년부터는 세계시장 진출을
본격화한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 오광진 기자 kjo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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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연찬 사장이 걸어온 길

<> 42년생
<> 명지대 졸업
<> 81년 장암상사 창업-특수윤활제 수입
<> 87년 법인전환
<> 92년 인천공장 준공
<> 95년 국산 그리스 UL인증
<> 97년 1SO 9001 인증획득
<> 98년 자동차 CV조인트용 그리스 특허 획득, 한국윤활학회 포스터기술상
수상, 장암기술연구소 설립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