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0년이 넘게 아침 산보를 계속해오고 있다.

이른 새벽 문을 여는 순간 밤새 고여 있던 집안 공기속으로 신선한 향기의
새벽기운이 빨려 들어온다.

목화솜에 스미는 물처럼 온몸이 맑아진다.

비가 온 다음 날엔 청량함이 더하다.

주변이 유난하게 깨끗해 보인다.

집집마다 정원수는 마치 새옷을 갈아입은 듯 그 푸르름이 눈부시다.

이름모를 새들의 노래소리도 구슬처럼 맑다.

늘 다니는 길인데도 매번 같은 느낌이 아니다.

마음이 무거운 날이면 오르막길이 많아 보이고 계획했던 일을 성취한
다음날 아침엔 모든 길이 다 내리막처럼 편하면서도 넓어 보인다.

그러고 보면 변하는 것은 길이 아니라 바로 내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집에서부터 왕복 3km 남짓의 서울 연희동길.

산보 중간에 두 전직 대통령의 사저를 지나고 약 1km는 서서히 속도를 낮춰
호흡을 조절하다보면 속옷이 촉촉이 젖으면서 몸이 가벼워진다.

하루의 에너지가 충전되는 듯한 느낌이 절로 든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허약해지기 쉬운 하체를 무리하지 않고 단련하는 방법
으로는 매일매일의 산보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

그 때문인지 수십년간 1백74cm의 신장에 맞는 70kg의 체중을 계속 유지해
오고 있다.

흔히 건강의 3대 기본요건을 유전적요소 환경적요소 행동습관이라고들 한다.

친구들은 내가 운좋게도 3가지 모두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우선 부모님으로부터 건강한 몸을 물려받아 지금까지 보약 한첩 먹지
않고도 큰 병치레 없이 지내왔다.

태어난 곳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가 됐던 강원도 평창이다보니
어려서부터 오대산의 심산유곡을 놀이터 삼고 약수를 마시며 지낸 탓에
자연스럽게 튼튼한 체력을 갖게 됐다.

그 때문인지 60년대 삼성생명 근무시절 그룹체육대회에서 5년간 육상릴레이
우승을 놓치지 않았던 기억이 새롭다.

40년을 한결같이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 임하다보니 그것이
습관이 돼 이제는 간혹 몸살을 앓더라도 눕기보다는 더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치료를 대신하는 처방도 갖게 됐다.

오늘도 하루를 두번 산다는 생각으로 현관문을 연다.

천천히 걷다 빨리 걷고 다시 천천히 걷는 것을 반복하면서 오늘 내가
해야할 일들을 꼼꼼히 챙겨본다.

즐거운 일은 더욱 즐겁게 할수 있도록 계획을 점검하고, 잘 풀리지 않는
일은 좋은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새벽의 산보는 나에게 건강과 더불어 하루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열쇠를
쥐어준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