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실 <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IMF위기는 금융업 종사자는 물론 우리국민 전체가 금융산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믿었던 은행의 퇴출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IMF관리체제 진입은 공식적으로 1년 반이 지났다.

그러나 금융권의 구조조정은 부실은행을 자산부채인수(P&A)방식으로 퇴출
시킨 작년 6월29일을 기점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이제 막 1년이 된 셈이다.

금융권이 유례없는 변화를 겪는 가운데에서도 작년 9월 이후 주식시장은
회복세를 보였다.

주가지수가 IMF 수준과 비교할 때 2배 이상 뛰었다.

일부 은행에 살아남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요구되고 있지만 구조조정이
일단락되었다는 안도감과 함께 은행산업을 둘러싼 위기감이 크게 희석되고
있는 게 요즘 분위기다.

물론 금융시스템의 위험이 상당히 줄어들긴 했다.

그러나 은행의 새로운 위기는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은행산업의 문제는 단지 재무상의 불건전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나라 은행업의 영업권가치 자체가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은행업 인가 자체만으로 어느 정도 영업수익이 보장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은행업에 대한 영업권 프리미엄이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이는 은행의 금융매개기능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음을 뜻한다.

은행의 총자산규모는 한국의 경우 국내총생산(GDP)대비 1백25%(98년 기준)
정도다.

이는 일본의 1백50%보다는 낮으나 미국의 50%수준에 비해선 매우 높은
것이다.

가계금융자산 중 예금 및 현금비율도 우리나라는 55%수준으로 일본의
65%보다는 낮으나 미국의 15%에 비하면 매우 높다.

몇 가지 기준으로 살펴볼 때 우리나라의 금융산업 구조는 일본형과 미국형의
중간에 있는 셈이다.

다만 최근 미국의 기준이 글로벌스탠더드화 함에 따라 미국형으로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중이다.

때문에 이미 80년대에 심각한 탈은행화를 겪었던 미국은행의 쓰라린 경험을
국내은행들도 겪지 않을 수 없을 전망이다.

90년대 들어 국내은행들의 자산은 연평균 20%이상씩 빠른 속도로
불어났었다.

최근들어 새로운 사업기회가 제공되기도 하였지만 금융자율화 및 기업들의
직접금융화로 인해 은행의 사업영역은 오히려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지난 97년 9월 증권사가 투자신탁의 수익증권을 대신 판매하도록
허용되면서 그해말 5조원에 불과하던 수익증권판매고가 금년 5월말 현재
2백46조원에 이르렀다.

반면 은행 신탁계정의 주력상품인 금전신탁의 잔고는 97년말 1백93조원에서
금년 5월말 현재 1백39조원으로 54조원이나 감소했다.

증권사로 돈이 몰리자 여기에 맞서 지난 4월12일 은행권에 단위형 신탁
발매가 허용됐다.

이후 현재까지 약 7조원 이상의 자금이 은행권으로 유입됐지만 투신권의
수신확대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특히 IMF위기 이후 은행의 영업권가치는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눈덩이처럼 늘어난 은행권 손실과 최근의 부실한 재무상황으로 인해
은행들은 새로운 사업기회에 대해 투자할 엄두를 못내고 있다.

게다가 장기적으로 볼 때 예대마진은 줄 수 밖에 없다.

제2금융권 및 외국은행과의 경쟁은 격화되고 있는 마당에 은행의 영업이익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부실채권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이 건전은행과 불건전은행을 차별화시키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은행
시스템 자체를 위험에 취약한 상태로 가져가고 있다.

금융자율화 및 은행의 재무적 취약성을 틈타 외국금융기관들이 국내 투자를
늘리고 있는 반면 국내은행들은 자기자본비율이 낮아 해외영업을 포기하고
있다.

그만큼 은행의 국제영업력 강화는 요원해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은행산업의 역할은 자체적인 부가가치 창출보다는 실물경제
지원에 무게가 두어졌었다.

규제완화 또한 정부주도에 의해 시혜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때문에 은행산업의 발전은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규제가 완화된 부문에서도 행정지도 성격의 규제가 계속돼 은행은 차별적
전략에 의해 심화.발전할 여지가 없었다.

금융권별 형평을 고려한 규제완화가 부분적.점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점도
은행산업이 역동성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은행이 전통적인 금융서비스에 정보서비스를 가미한 새로운 금융상품을
공급하되 정보비용과 거래비용을 낮춰 자원배분의 중심기구로서의 위상을
되찾지 못한다면 은행산업의 위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 insill@keri.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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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미네소타대 경제학박사
<>미국 휴스턴대 교수
<>하나경제연구소 금융조사팀장
<>주요논문:금융실명제 실시 1년의 평가와 향후 과제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