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의 화두는 특별검사제도 아니고 국정조사도 아니다.

한주가 멀다하고 흘러나오는 정체 불명의 "xxx 리스트"이다.

비리사건이 터지면 뇌물 수수 의혹이 있는 정치인들의 이름을 거론한
리스트가 즉시 뒤따라 나오기 때문이다.

원철희 전 농협중앙회장이 비리 혐의로 구속되자 "원철희 리스트"가,
"옷 로비" 의혹설이 나돈 지난달 말에는 "최순영 리스트"가 나온게 그
예이다.

또 기아 김선홍 리스트, 이종기 변호사 리스트, 병무비리 관련 원용수
리스트 등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만도 셀 수 없이 많은 리스트가 양산됐다.

특히 최순영 리스트는 의원회관을 중심으로 하나도 아닌 세종류가 나돌았다.

거론되는 정치권 인사들도 20여명에 이른다.

이번주도 벽두부터 "그림 로비" 의혹설이 불거져 나오자 예외없이 "이형자
(최순영 신동아 회장 부인) 리스트"가 나왔다.

이 리스트는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로비를 받은 혐의자의 이름은 물론
뇌물 액수까지 담고 있다.

한마디로 이전의 리스트에 비해 보다 구체적이고 대담한 내용을 담고있는
것이다.

정치권이 이들 리스트에 불안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리스트에 이름이 들어있는 정치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혐의가 없는 대부분의
의원들 조차 찜찜해 하기는 매 한가지다.

"털어서 먼지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식의 입장이다.

리스트가 나돌때마다 이름이 거론되는 "단골의원"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비리 혐의자들도 이를 악용하듯 검찰수사 과정에서 관련 인물을 은근히
흘리는 물귀신 작전도 구사하고 있다.

때문에 정치권은 조폐공사의 파업유도 의혹을 밝히는 것 보다는 이들
리스트의 불똥이 자신에게 튀지 않을까에 더 한층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청와대의 사정설이 나돌때마다 "리스트 공포"에 잔뜩 움츠리는 분위기가
확연하다.

문제는 리스트가 양산될수록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더욱
깊어진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고비용 저효율" 집단으로 비난받고 있는 정치권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이들 리스트의 상당수가 상대방을 음해하기 위해 정치권 내부에서
만들어 지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결국 정치인들이 갖고 있는 리스트 공포는 깨끗한 정치를 하지 못한데 따른
자업자득의 결과인 셈이다.

< 김영규 정치부 기자 yo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