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보수와 개혁 사이에서..신상민 <본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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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이 나서 멈춰버린 시계와 하루 1분씩 빨리 가는 시계는 어느 쪽이 더
정확한가.
멈춰있는 시계는 하루에 두번은 정확한 시간을 나타내지만 하루 1분씩 빨리
가는 시계는 겨우 2년에 한번 정확한 시간을 가리킬 뿐이다.
바로 그런 역설적인 논리에 따르면 멈춰서있는 시계가 더 정확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고 전자가 정말 후자보다 더 정확한 시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좀더 정확히 말해 과연 있기나 할지 의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 역설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실체를 좀더 정확히 파악하려면 일견 우스꽝스럽고 비생산적인 듯한 이런
방식의 접근이 종종 요긴한 경우가 있다.
며칠전 저녁을 함께 했던 어느 언론계 선배 한분이 이런 얘기를 했다.
"러시아나 중국 또는 동구 국가에서는 공산당이 보수다. 그렇다고 그들을
우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보수=우익, 진보=좌익"
이라는 고정관념화한 등식은 더이상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또 "진보라는 것도 어떤 잣대로 재야할지 생각해볼 대목이 있다.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물론 의회에서도 다수당이었던 때조차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의료보험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제도화하지 않았던 미국의
진보세력, 곧 민주당은 일찍이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들고 나온 유럽의 진보
세력 기준으로 보면 진보 축에도 못낀다. 그러나 의료보험 의무화를 제도화
했다고 해서 일본 자민당을 미국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는 지적이었다.
따지고 보면 지극히 원론적인 당연한 얘기이고, 멈춰서있는 시계와 1분씩
빨리가는 시계중 어느 쪽이 정확한지 따지는 것 만큼이나 시각에 따라 주장이
다를 수도 있는 얘기지만 뭔가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유행어처럼 쓰이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보수 진보, 그리고
개혁이라는 용어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경상도 사투리로 "씰데 없는" 소리에 해당할지도 모를 그런 얘기들을 하는데
나는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는 용어는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국민학교 시절 우리나라 지도를 앞에 놓고 보면서 분명히 전라도 해안
오른쪽이 관할영역이었던 이순신 장군이 왜 전라좌수사였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기억도 겹쳐 이쪽에서 보면 왼쪽, 저쪽에서 보면 오른쪽인 것을 꼭
좌우로 이름을 붙여 고정시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않기 때문이다.
친기업적이면 보수고 그래서 반개혁적이라는 식의 해석에도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현재의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가려는 것이 보수라고 볼때 기업을 옹호하는
것이 그렇게 통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와의 관계에서 기업이 주장하는 것이 시장의 논리고
규제를 철폐하라는 내용인 점을 감안하면 기업목소리를 반개혁적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잘못 아니냐는 반문도 보기에 따라서겠지만 결코 설득력이
없다고만 하기 어렵다.
현정부의 대기업정책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개혁적이다.
5대 그룹 빅딜, 강력한 내부거래 조사, 부채비율 2백%이내 축소요구 등
일련의 조치들은 하나같이 현재의 대기업체제에 메스를 가하겠다는 것으로
그 현실성이나 타당성에서 논란은 결코 적지 않지만 어쨌든 개혁적 색깔을
분명히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정책이 추진되는 행태를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어느 그룹은 무엇을 인수할 수 없다고 강조하다가 불과 며칠이 안가 해도
좋다고 번복하는 등의 관계장관들의 발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법률적 뒷받침도 없는 자의적 행정의 표본이고 전시대의
행태를 되풀이하는 것이란 점에서 진보나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대기업에 대한 부채비율 2백%이내 감축요구 등도 좀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30대그룹이 이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1백조원의 유상증자나 자산의 50%에
달하는 2백조원어치를 매각해야 한다는 게 삼성경제연구소 분석이다.
한마디로 올해 달성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 결과는 뻔하다.
기업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정부권한이 더욱 강화하도록 명분을 축적시키는
꼴이 될 것이다.
관 주도경제의 골격은 변할 까닭이 없고 시장경제는 계속 공허한 구호로
존재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외형상 개혁적인 듯한 대기업정책,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구가 결국
퇴행적이고 전시대적인 내용을 결과하게 될 것이란 얘기가 된다.
일련의 대기업정책을 지켜보면서 그런 걱정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기업개혁을 위해선 기업에 대해 애정을 갖는 정책, 바람보다는 햇볕이 더
긴요한 상황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3일자 ).
정확한가.
멈춰있는 시계는 하루에 두번은 정확한 시간을 나타내지만 하루 1분씩 빨리
가는 시계는 겨우 2년에 한번 정확한 시간을 가리킬 뿐이다.
바로 그런 역설적인 논리에 따르면 멈춰서있는 시계가 더 정확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고 전자가 정말 후자보다 더 정확한 시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좀더 정확히 말해 과연 있기나 할지 의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 역설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실체를 좀더 정확히 파악하려면 일견 우스꽝스럽고 비생산적인 듯한 이런
방식의 접근이 종종 요긴한 경우가 있다.
며칠전 저녁을 함께 했던 어느 언론계 선배 한분이 이런 얘기를 했다.
"러시아나 중국 또는 동구 국가에서는 공산당이 보수다. 그렇다고 그들을
우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보수=우익, 진보=좌익"
이라는 고정관념화한 등식은 더이상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또 "진보라는 것도 어떤 잣대로 재야할지 생각해볼 대목이 있다.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물론 의회에서도 다수당이었던 때조차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의료보험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제도화하지 않았던 미국의
진보세력, 곧 민주당은 일찍이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들고 나온 유럽의 진보
세력 기준으로 보면 진보 축에도 못낀다. 그러나 의료보험 의무화를 제도화
했다고 해서 일본 자민당을 미국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는 지적이었다.
따지고 보면 지극히 원론적인 당연한 얘기이고, 멈춰서있는 시계와 1분씩
빨리가는 시계중 어느 쪽이 정확한지 따지는 것 만큼이나 시각에 따라 주장이
다를 수도 있는 얘기지만 뭔가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유행어처럼 쓰이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보수 진보, 그리고
개혁이라는 용어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경상도 사투리로 "씰데 없는" 소리에 해당할지도 모를 그런 얘기들을 하는데
나는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는 용어는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국민학교 시절 우리나라 지도를 앞에 놓고 보면서 분명히 전라도 해안
오른쪽이 관할영역이었던 이순신 장군이 왜 전라좌수사였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기억도 겹쳐 이쪽에서 보면 왼쪽, 저쪽에서 보면 오른쪽인 것을 꼭
좌우로 이름을 붙여 고정시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않기 때문이다.
친기업적이면 보수고 그래서 반개혁적이라는 식의 해석에도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현재의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가려는 것이 보수라고 볼때 기업을 옹호하는
것이 그렇게 통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와의 관계에서 기업이 주장하는 것이 시장의 논리고
규제를 철폐하라는 내용인 점을 감안하면 기업목소리를 반개혁적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잘못 아니냐는 반문도 보기에 따라서겠지만 결코 설득력이
없다고만 하기 어렵다.
현정부의 대기업정책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개혁적이다.
5대 그룹 빅딜, 강력한 내부거래 조사, 부채비율 2백%이내 축소요구 등
일련의 조치들은 하나같이 현재의 대기업체제에 메스를 가하겠다는 것으로
그 현실성이나 타당성에서 논란은 결코 적지 않지만 어쨌든 개혁적 색깔을
분명히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정책이 추진되는 행태를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어느 그룹은 무엇을 인수할 수 없다고 강조하다가 불과 며칠이 안가 해도
좋다고 번복하는 등의 관계장관들의 발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법률적 뒷받침도 없는 자의적 행정의 표본이고 전시대의
행태를 되풀이하는 것이란 점에서 진보나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대기업에 대한 부채비율 2백%이내 감축요구 등도 좀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30대그룹이 이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1백조원의 유상증자나 자산의 50%에
달하는 2백조원어치를 매각해야 한다는 게 삼성경제연구소 분석이다.
한마디로 올해 달성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 결과는 뻔하다.
기업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정부권한이 더욱 강화하도록 명분을 축적시키는
꼴이 될 것이다.
관 주도경제의 골격은 변할 까닭이 없고 시장경제는 계속 공허한 구호로
존재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외형상 개혁적인 듯한 대기업정책,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구가 결국
퇴행적이고 전시대적인 내용을 결과하게 될 것이란 얘기가 된다.
일련의 대기업정책을 지켜보면서 그런 걱정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기업개혁을 위해선 기업에 대해 애정을 갖는 정책, 바람보다는 햇볕이 더
긴요한 상황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