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스트리트 저널, 뉴욕 타임스, AP, 블룸버그 등 유수 언론기관들의 본사는
월가와 지척지간인 맨해튼 남쪽에 몰려 있다.

그래서일까.

월가 금융기관들이 주요 이슈가 터질 때마다 이들을 적절히 활용해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언론들로서도 메가톤급 정보를 쉼없이 생산해내는 월가 기관들을 굳이
멀리할 이유는 없다.

97년 하반기 아시아에 외환 위기가 불어닥쳤을 때가 단적인 예다.

월 스트리트 저널, 뉴욕 타임스 등은 특종 경쟁에 열을 올렸고, 월가
금융기관들은 적절히 정보를 공급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을 자기들의 페이스로
끌고 간 바 있다.

국제 투자자들 사이에 뉴욕의 신문과 통신을 읽어야 월가의 기류를 알 수
있다는 게 정설로 돼 있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뉴욕 언론들을 통해 전해지는 월가의 기류는 곧바로 세계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외환위기 당시 태국과 한국, 러시아, 브라질 등으로부터 투자자들이 썰물
처럼 빠지고, 이후 극적으로 되돌아오기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이들 언론
보도가 미친 영향이 결정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뉴욕 언론들의 최근 한국 경제 관련 보도에 심상치 않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한국의 빠른 경기 회복 등을 들어 긍정적인 톤을 유지했던 보도 방향이
다시 비판 쪽으로 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와 월 스트리트 저널은 약속이나 한 듯 최근 제일 서울은행,
대한생명의 매각 과정과 SK텔레콤의 증자 등에 대해 문제점을 고발하는
기사를 연일 게재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SK텔레콤 증자 문제를 다룬 기사에서 제일 서울은행과
대한생명 처리 과정의 불투명성까지 싸잡아 꼬집었다.

뉴욕 언론들의 이런 지적은 월가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서도 직접 확인되고
있다.

월가 유수 은행의 한 코리아 데스크 책임자는 뉴욕 언론들의 보도에 대한
견해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국이 또다시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실물경제의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어둔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개혁 드라이브에 대한 월가 투자자들의 신뢰
덕분이었는데, 요즘 그 신뢰에 금이 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월가 시각이 전적으로 옳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차제에 대외적 약속
사항이기도 한 개혁의 이행 상황을 한번쯤 되짚어볼 시점인 것 같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