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측의 계속된 지연전술로 차관급회담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현재로선 서로가 회담의 진전을 놓고 암중모색하는 단계다.

우리측 대표단은 23일 북측과 전화연락을 통해 회담 재개의사를 타진했다.

이에 대해 북측은 "평양으로부터 별도의 지사가 없어 오늘(23일) 회담을 열
수 없다"고 통보했다.

그렇다고 회담의 앞날이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북한 대표단은 이날 전화접촉에서 서해교전사태에 대한 남측의 사과가
회담재개의 "전제조건"은 아니라는 점을 재차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분간" 베이징에 더 머물겠다는 의사도 분명히 전달했다.

이런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북측이 당장 회담을 결렬시킬 의사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북측이 회담을 지연시키는 이유는 무얼까.

일단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위한 "계산된 시간벌기" 전략일
가능성이 높다.

북측은 첫날 기조연설을 통해 서해 교전사태에 대한 남측의 사과를
요구했지만 차관급 회담의 의의도 분명히 인정했다.

"이번 회담은 온 겨레가 북남 관계개선과 조국통일에 대한 절절한 염원을
안고 지켜보는 의의깊은 회담"이라고 밝힌 것이다.

원칙적이긴 하지만 이산가족문제를 차관급 회담에서 거론하겠다는 의사
표시다.

북한 대표단들의 협상태도도 경직되지 않았었다는게 우리측 대표단의
전언이다.

북측은 특히 우리 대표단과의 논쟁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서해교전문제를 상징적으로 제기하고 적절한 선에서 이산가족문제에 대한
실무적 협의로 넘어갈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북한은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금강산 관광객 억류사건과 서해교전
문제, 차관급회담 등을 "연계"하려는 의도가 짙은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으로서도 금강산 관광객이 계속 억류돼 있는 상황에서 차관급 회담의
진전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차관급 회담이 타결되면 2차 지원분 비료 10만톤이 전달되야 하는데
관광객이 북에 인질로 잡혀 있는 한 비료지원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북한 대표단이 평양의 지시를 기다리는 것도 이같은 복합적인 사정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날 베이징 시내 월드차이나 호텔에선 북미간 고위급회담이 열렸다.

북방한계선(NLL) 문제등을 다루게 될 북미간 회담이 열리는 시점에 차관급
회담을 하루 공전시킴으로써 협상력 강화를 노렸음직하다.

현재 북한이 보일 수 있는 협상전략은 세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첫째 이산가족 문제를 남측과 합의하되 규모와 내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생사확인 서신왕래 상봉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1회성 사업으로 국한하는
방법이다.

둘째 차관급회담에선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한다는 큰 테두리만 합의하고
구체적인 사항과 절차는 실무접촉으로 다시 넘기는 방법이 있다.

북한으로선 일단 시간을 번다는 이점을 챙길 수 있다.

셋째 회담에서 서해교전사태와 관련한 남측의 사과를 계속 요구함으로써
차관급 회담을 결렬시키는 것이다.

2차로 지원될 비료 10만톤의 유효성을 감안했을 때 북한이 세번째 전술을
구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게 현지 대표단의 분석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은 24일중 다시 회담테이블에 앉을 것으로 보인다.

속개되는 차관급 회담에서 북한이 보일 태도가 향후 회담의 앞날을 짚을 수
있는 주요 분수령이 될 것만은 분명하다.

< 베이징=이의철 기자 ec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