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사회가 "사기는 죽고 오기만 남아"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보수는 물론, 직업인으로서의 안정감과 비전마저 상실해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가고 있다.

여기다 잇따른 사정한파와 여론의 따가운 시선은 "공복의 자부심"마저
무참히 짓밟고 있다.

최근에는 3공시절의 "가정의례 준칙"을 연상케 하는 10계명까지 내려져
공무원들을 더욱 "왕따"로 만들고 있다.

<> 박봉에 절규하는 공무원들 =인터넷 포털 사이트중 하나인 "geocities"에
최근 "공무원 모임"이라는 한글 웹사이트가 개설됐다.

공무원 처우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대화마당이다.

"짜장면", "충견" 등이 자주 등장하는 논객이다.

익명에서부터 공무원 처지에 대한 자조가 느껴진다.

이들이 퍼붓는 독설이 아니더라도 보수문제에 대한 공무원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재경부의 한 공무원은 "동창모임에 나가보니 내 월급이 동창들 평균임금의
60%정도 밖에 안됐다"고 허탈한 표정이다.

실제로 15년을 근속한 7급 사무관의 월급은 1백3만원.

상여금을 포함해도 1백52만원에 불과하다.

월급의 절대액이 적다는 것만이 불만의 전부는 아니다.

업무강도와 관계없이 획일적인 보수체계도 "열심히 일할" 의욕을 꺾고 있다.

재경부 등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걸핏하면 새벽 2-3시까지 야근이다.

반면 일부 관청의 공무원들은 하루에 3-4시간만 집중근무하면 사실상 업무가
끝난다.

그래도 월급은 똑같이 받는다.

생산성을 높일 "동기부여"가 없다.

<> 문제는 박봉만이 아니다 =정부 조직개편으로 더욱 심화된 인사적체와
신분의 불안정은 앞으로의 희망마저 앗아가고 있다.

과천 경제부처에는 보직을 받지 못한채 본부대기중인 국.과장급 공무원이
부지기수다.

능력이 모자라서 대기중인 것도 아니다.

해외연수나 파견을 마치고 돌아와보니 자리가 없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급여나 인사에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자부심의 붕괴"다.

재경부의 한 과장의 경험담.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녀석이 풀이 죽어 있더라구요.

선생님이 IMF얘기를 해 주면서 "공무원들이 나라를 망쳤다"고 했다는
거예요. 애한테 어찌나 미안하던지..."

최근 공무원 10계명이 발표된 후로는 공무원사회에 "왕따" 피해의식까지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는 정부미가 일반미들하고 같이 놀아서는 안된다는 얘기지요"

기획예산처 직원의 자조섞인 한마디다.

"그동안 곗돈 붓는 셈치고 부조금을 내왔는데 내 차례에 와서 계가 깨져
버린 기분"이라는 국장급 공무원의 한탄도 들려온다.

<> 공무원을 "왕따"시켜서는 안된다 =이렇게 근무여건이 악화되자 유능한
관리들의 이탈이 잇따르고 있다.

재정경제부에서는 올들어서만도 4명의 엘리트 공무원이 관복을 벗어던졌다.

기획예산처 산업자원부 등 다른 부처도 이탈자가 속출하고 있다.

과천에는 요즘 이들을 "사냥"하기 위한 헤드헌터들이 몰려든다는 소문이다.

때문에 식자층에서는 "공무원들의 좌절감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공무원 사회가 계속 위축될 경우 장기적으로 "공무원의 자질 저하"가
초래될 것이기 때문이다.

행정도 국가 경쟁력의 주요 요소인만큼 우수한 인력이 계속 공급돼야
한다는게 이들의 지적이다.

외국의 사례도 이를 뒷받침한다.

80년대초 영국에서는 경찰공무원들의 퇴직 붐이 일었다.

연일 계속되는 시위진압에 시달리면서도 박봉에 쪼들렸기 때문이다.

이에 대처총리는 경찰공무원들의 봉급을 대폭 인상했다.

대신 태만하거나 부패한 경찰은 가차없이 처벌했다.

덕분에 경찰공무원들의 근무태도가 크게 개선됐고 이는 "영국병"을 치유하는
원동력이 됐다.

< 임혁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