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곧 미국을 찾는다.

일단 워싱턴은 외환위기를 극복, 한국인의 저력을 대외에 과시한 김대통령을
환영할 것이다.

미국은 개방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김대통령을 좋아한다.

IBM도 한국에 있으면 한국기업 이라는 그의 표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의 위기극복이 이같은 개방의지에서 비롯됐다고 믿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통령의 방미에 맞춰 워싱턴을 찾은 한국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수호에 대단한 결의를 표명하고 돌아간 것은 묘한 여운 남긴 부분이었다.

한국의 지도층은 개방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밑바닥까지 철저히 개방된
것은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한국은 개방을 외치고 있다.

우리에겐 아직도 보호주의적인 의식이 깔려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영광굴비신드롬이다.

영광굴비는 한국인들에게는 남다른 정서가 깃들어 있는 토종품이다.

흑산도 홍어 또한 이에 뒤지지 않는 의미를 지니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옛날 같으면 일반 서민들 상에 오르던 그리 비싸지 않은 음식들이지만
이제는 너무 비싸 귀족상품이 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쪽 서해와 한반도쪽 서해에서 잡히는 조기는 전혀 다르다는 주장에
그럴 수 있으리라고 공감할 수는 있다.

영광지방의 독특한 햇볕과 바람 그리고 한국인들이 개발해온 건조기술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논리를 반박할 의사 또한 없다.

썩혀 먹는 홍어의 경우 그 썩히는 기술은 아무나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부정할 의사가 없다.

하지만 영광굴비와 수입굴비의 값이 심한 경우 7배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에는 쉽게 공감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양심이다.

영광굴비는 인정할 수 있지만 영광굴비경제학은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씨가 말랐다는 흑산도홍어의 희소가치는 인정할 수 있지만 흑산도홍어경제학
은 수긍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광굴비와 흑산도홍어예찬론에는 보호주의가 깔려 있다.

영광굴비가 제값에 팔려 이를 만드는 어민들의 호주머니를 부풀려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익은 유통업자의 배만 부풀리고 있을 뿐이다.

가짜 영광굴비가 뇌물로 상납되고 진품을 받았다고 속고 속이는 우리 사회의
영광굴비신드롬은 우리사회가 얼마나 경제의 본질이 무시되는 사회인가를
대변하는 어두운 단면이다.

17년짜리 양주와 30년짜리 양주를 맥주에 섞어 폭탄주를 마시니 그 맛이
다르다고 주장해대는 것과 영광굴비신드롬과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맥을
같이 하는 얘기다.

최근 값이 21억원이나 되는 대형아파트가 동이 났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를 실평수로 계산하면 평당 3천5백만원이 된다.

미리 내야 하는 현금이 잠겨있어 발생하는 이자까지 계산하면 평당가격은
이보다 더 올라간다.

미국기자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부동산재벌 트럼프가 한국을 찾는
이유를 알겠다고 비아냥거렸다.

물론 가격형성과정에는 경우에 따라 경매(auction)현상이 있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이 없어도 몇몇 사람만 꼭 사야겠다고 달려들어
가격 올리기 경쟁을 벌이면 가격은 한없이 오를 수 밖에 없고 거기에 거품이
생긴다.

하지만 그것은 골통품이나 그림등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대체재가 있는 영광굴비, 흑산도홍어 그리고 아파트에까지 번진 경매현상은
분명 우리사회의 큰 허영병의 단면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영광굴비경제학의 허구를 얘기할 수 있는 용기를
잊어버리고 살아왔다.

그것은 어쩌면 허영심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 워싱턴특파원 http://bjGloba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