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서 생산되는 전자의료기기만해도 지난 97년을 기준으로 6천4백여종
이 넘는데 이중 10만대를 초과하는 품목은 거의 찾아볼수 없다.

다품종 소량생산의 전형이다.

라이프사이클도 빠르다.

의학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연한 생산방식을 갖추는 것이 필수다.

의료용구산업은 의학발전, 고령화사회진행, 자가진단욕구확대, 한방진료의
과학화 등에 힘입어 성장잠재력이 극히 높은 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이 분야도 신약개발과 마찬가지로 완제품을 내놓으려면 막대한
자금과 오랜 시간을 들여야한다.

품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는 과정이 길기때문에 아무나 섣불리 이
시장에 뛰어들 수 없다.

특히 전자의료기기 분야는 전자공학 전산공학 제어계측공학 의학 생체공학
등의 다양한 분야의 기술이 종합돼야 성공을 거둘수 있다.

그 대가로 접근이 어려운 만큼 인접산업의 시장확대와 기술개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

이 시장은 기술집약형.고가.고부가가치.고성능제품을 개발하는 선진국과
노동집약형.중저가제품을 조립생산하는 개도국으로 양분된다.

특히 미국의 GE, 독일의 지멘스, 일본의 히타치 등의 다국적 업체는 월등한
기술에다 막대한 연구비를 쏟아부으며 막강한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한국은 이런 틈새를 어떻게 열어제칠 것인가.

<> 원천기술확보만이 살길이다 =지난 85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의
이민화회장이 동료 6명과 함께 의료기기 벤처기업인 메디슨을 설립했다.

당시에는 거대 다국적업체에 맞서 연간 1천9백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재 메디슨은 세계 초음파진단기 시장의 7%, 국내초음파시장의 80%를 차지
하고 있다.

특히 지난 97년 세계최초로 개발한 3차원 디지털 초음파진단기를 개발, 미국
이나 일본보다 기술력이 앞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IMF를 맞아 국내경제가 휘청거리던 작년에 35%의
매출성장을 보였다.

이는 원천기술확보를 위해 매년 매출액의 10~12%를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전직원의 3분의 1이 연구인력으로 매진한 덕택이다.

<> 틈새시장공략을 위한 산학협동 =장시간 거액의 투자가 필요한 전자
의료기기분야는 그만두고라도 사소한 1회용 수술소모품마저 외국산을 쓰는
의료계의 현실은 아무런 문제의식없이 외화가 새나가는 "밑빠진 독"이 되고
있다.

김응국 가톨릭대 성모병원교수는 세종메디칼 솔고 등과 함께 여러제품을
국산화했다.

외국제품의 4분의 1 가격수준으로 복강경수술을 할때 뱃가죽을 뚫는 투관침
을 개발했다.

수술시 떼어낸 적출물을 담아 몸밖으로 꺼내는 1회용비닐백은 10분의
1수준으로 국산화했다.

최근에는 세계최초로 내시경바깥에서 미리 매듭을 만들어놓고 이를 내시경안
으로 밀어넣어 봉합하는 "오픈-룹"을 삼양사와 공동개발했다.

김교수는 "오픈룹의 개발로 수술시간이 단축되고 월3천만원가량의 봉합사
수입을 대체할수 있고 해외수출도 가능하게 됐다"며 "의사들이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수술기구를 개량하거나 국산화하려는 의지만 갖는다면 얼마든지
국내산업을 발전시키고 외화유출을 막는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에서는 의료용품회사가 의사를 자문역으로 초빙, 아이템을 얻고
신제품개발에 반영한다며 의료현장에서 이뤄지는 산학협동이야말로 최고의
발전원동력이라고 지적했다.

<>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의료용구시장에는 수요자나 공급자나 획기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주된 소비자인 의사들의 "국산은 안좋다"는 근거없는 불신을 불식
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의학의 발전자체가 외국의술을 그대로 도입하는 것이다보니 중견의사
부터 인턴까지 줄곧 손에 익은 외제 의료용구를 쓰게 마련이다.

이에 따라 국산은 저질이다는 고정관념이 쉽사리 깨지지 않고 있다.

메디슨이 지난 96년 내놓은 MRI는 외국산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지 않고
가격은 대당 5억원이상 낮은 10억원인데도 현재까지 고작 18대밖에 팔리지
않은 상태다.

공급자들도 안이한 의식을 갖고 접하는 사람들이 적잖다.

의대나 공대를 나온 사람이 의료기기를 개발하기는 커녕 수입상을 차려
외국의료기기를 국내로 들여와 판매하고 있다.

또 일부 벤처창업가들은 필수적인 의료기기를 개발하기보다는 단순한
자가진단및 치료기기 등을 개발하는게 고작이다.

단기적인 상업성은 좋지만 보다 산업적 생명이 길고 고부가가치를 구현할수
있는 아이템에 매달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 의료용구산업의 인력창출효과 =최근의 산업연관표로 추정하면 의료용구
산업에서 1백억원의 매출이 발생하려면 인접산업에서 2백12억원어치의
직.간접적인 생산이 유발돼야 하고 1천4백26명에 달하는 노동인력이 매달려야
한다.

특히 의료용품및 의료기기산업은 노동집약적이면서도 기술집약적인
산업이어서 숙련된 단순노동인력과 최첨단기술을 가진 고급노동력이 동시에
필요한 분야다.

또 소재산업의 발달이 필수적이다.

인체에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고 생체활성을 갖는 소재를 개발하는 것이
바탕이 된다.

그러나 국내업계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개발의 노하우가 축적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

손해가 크기 때문이다.

소재산업및 생명과학에 조예가 깊은 인재들의 역량을 집중시켜야 도약을
약속할수 있다.

국내서는 전기 전자공학을 배운 사람이 어깨너머로 의학을 이해하면서
전자의료기기를 개발해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몇년전부터 남아돌고 있는 의사들이 의료용구산업에 종사한다면 대단한
시너지가 생길 것이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의료용구시장은 국내수요확대에 한계가 있는 만큼 해외진출이
필수다.

국제적인 마케팅능력을 겸비한 의학및 전자공학 전문가들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 정종호 기자 rumb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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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말 주신분 =조재국 한국 보건사회연구원 박사, 김철생 솔고 사장,
김응국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교수, 김문수 메디슨 과장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