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만 두었다는 것이 죄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아들이 없다면 남들도 서운해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 아들만 가진 어머니는 동정받는다.

이렇게 딸 가진 어머니의 죄에서 아들 가진 어머니의 동정까지 오는 변화의
세월을 우리는 잘 읽어야만 한다.

아들만 둔 어머니를 동정하는 것은, 그리고 아들을 둔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근심은 우리 사회가 점점 "남성으로 살아가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사회가 남성만을 키우지 않는 건 물론 남성중심의 모든 구조가 양성 중심
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 진행의 속도는 머지 않아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더욱이 지난 한 해 6.25 동란 이후 최대의 환난이라는 구제금융 시기를
거치면서 남성의 그늘이 확연히 드러난 것이다.

그 때 나는 은행에 가면 "살아 남은 은행원"들을 보는 것이 큰 슬픔이었다.

어린 자식들을 두고 하루아침에 해고된 가장이나 그 가족과 마주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몰라 도망가고 싶었다.

전업주부로 살던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강제로 이혼 당하는 청천벽력을
남성들이 집단적으로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강제 이혼의 경험을 가진 여성보다 강제해고를 당한 남성이 더
위험한 것은 그들이 가진 우월감 뒤에 있던 가족에 대한 부양의무와 권리의
박탈이다.

요새 남자들은 아마 양성 관계의 변화가 당혹스러울 것이다.

남성이 누렸거나 마음에 둔 우월감은 남성 개개인이 선택한 가치는 아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 가치가 낡았으며 사회발전에 장애가 되는 것이라고,
여러 가지로 말하고 압력을 준다.

이런 말과 압력의 표현이 남성에게 좌절감이나 박탈감을 갖지 않게 하면서
변화에 적응하고 변화의 역사적 필연성을 인식케 하는 것, 갈등이 새로운
사회적 성숙을 위한 거름이 된다는 걸 인정하는 일, 강한 남자, 지배자 남자,
이것이 어깨의 훈장이 아니라 족쇄였다는 걸 남성이 안다면 이 시대 남성의
슬픔이 덜어지지 않을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