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택 < 중앙대 교수 / 경제학 >

지난주의 가장 큰 경제 뉴스는 삼성자동차의 법정관리 신청이었다.

이에 따라 작년 12월7일 청와대 정.재계 간담회에서 합의된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의 빅딜(사업교환)은 사실상 무산되었다.

법정관리 신청과 동시에 이건희 회장은 개인적으로 삼성생명 주식 4백만주를
출연하여 이 자금으로 협력업체의 손실을 보전해주고 은행 등 채권단의
부채를 상환하기로 했다.

이제 삼성자동차의 운명은 법원과 채권단의 손에 달렸다.

독자회생을 시킬 것인가, 제3자에게 매각할 것인가 또는 아예 청산할
것인가는 채권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을 포함한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사재출연 결단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러나 주주는 출자한도 내에서만 책임을 지는 주식회사제도와 같은
기본적인 자본주의 시장원칙이 무너진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였다.

이같은 일이 반복되면 사업가들은 불안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까.

즉 자본주의 경제 성장의 원동력인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게 되어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 발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부분적으로 동의를 하나 전체적으로 볼 때 삼성자동차의
법정관리 신청은 시장경제 원칙에 충실한 행위로 보아야 한다.

그동안 추진해오던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빅딜은 시장 경제의 제도와 법
테두리를 뛰어넘는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었다.

회생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기업은 가능한 한 빨리 도태시켜야 시장경제가
원활하게 작동한다.

상호 이해 관계가 맞지 않는 기업들의 사업교환을 정부주도로 억지로
추진하면 오히려 해당기업들의 경쟁력만 저하시킬 뿐이다.

더구나 이같은 시도는 법과 질서가 존중되는 사회에서는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 이번 사례로 입증되었다.

삼성계열사들이 삼성자동차의 부채를 일부씩 부담한다는 원래의 구상이
실현되었으면 대우자동차로의 합병이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법과 제도를 무기로 내세운 외국인 주주와 소액주주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이 모든 것이 좌절되었다.

불가능한 사업교환이라는 신기루 추구로 인해 해당 그룹들의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등 우리 경제가 입은 피해는 상당하다.

정부의 빅딜 정책에 관해 언론이 처음부터 사업별로 가능성여부를 심층
보도하여 견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였으면 사전에 이같은 시행착오를 막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일부 언론에서는 삼성자동차의 법정관리 신청은 창립 61년만에 처음 있는
일로서 삼성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고 보도하였다.

또한 이로 인해 삼성그룹 전체의 대외 이미지도 상당한 손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러나 삼성이 자동차 문제해결에 계속해서 미온적으로 대처하였다면 대외
신인도는 더욱 하락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법정관리 신청은 삼성자동차문제의 해결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삼성의 신인도 제고에 기여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삼성자동차의 법정관리 신청은 타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혁의
속도가 늦은 기업부문의 개혁을 가속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삼성자동차 법정관리 신청과 이 회장사채 출연으로 삼성자동차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언론에서는 삼성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들여 삼성생명의 주당 가격을
70만원으로 산정, 이 회장의 출연금을 2조8천억원으로 단정하여 보도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삼성생명의 주당가치가 70만원이나 되는 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한생명의 실사 결과에서 보듯이 우리 금융기관의 회계처리방식에는
못미더운 점이 많다.

또한 우리나라의 금융기관 회계기준 역시 제일은행의 매각 협상해서
나타났듯이 국제기준과는 차이가 많다.

삼성생명의 주식가치는 70만원보다 작을 가능성이 있다.

생명보험회사의 자산증식 이득은 주주가 독점해서는 안되고 보험가입자의
기여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생명보험회사 주식의 상장에 관해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 회장 주식출연금으로는 삼성계열사 이외의 삼성자동차 채무를 다
해결하려는 현재의 계획은 실현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삼성자동차에 아무런 지급보증이나 담보 없이 많은 돈을 대출해준 한빛은행
등 금융기관은 원칙적으로 삼성자동차가 부도 처리되면 대출금을 날릴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정부가 대주주인 이들 금융기관의 손실은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부담이 된다.

어떤 방식으로 든 채권은행들의 손실을 최소화하자는 정부의 의도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미 빅딜 추진에서 보았듯이 현행 제도와 법을 뛰어넘는 무리한
대책은 반드시 더욱 큰 부작용을 낳게 마련이다.

정부는 무리하게 채권은행의 자금회수를 위해 삼성생명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높이는 정책을 사용해서는 곤란하다.

채권단이 상당한 손실을 떠 안더라도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의 정상화를 위해 바람직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