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직장을 보장받는 프랑스 공무원 사회의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최근 프랑스 정부는 방만경영으로 지탄받아 오던 공공구매청(UGAP)에 대한
대수술을 감행키로 결정했다.

한국의 조달청에 해당하는 UGAP는 연간 60억~70억프랑(1조2천억~1조4천억원)
의 구매예산으로 관공서나 공공기관이 필요로 하는 물품 조달을 책임지는
기관이다.

이번 구조조정안에는 조직의 효과적 운영과 집행 예산 감독강화뿐만 아니라
1백여명이 넘는 대량감원도 포함돼 있다.

"공무원=실직염려가 없는 가장 안전한 직업"이란 일반적 통념을 깨는 혁명적
조치다.

감원방법도 조기퇴직이나 타부처로의 이동이 아닌 말 그대로 해고다.

이번 발표는 단순한 구조조정 차원을 넘어 비효율적이고 방만한 근무로
국민의 혈세를 탕진하는 공공기관과 공무원에 대한 준엄한 사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98년 감사원 조사 보고서는 지난 수년간 UGAP가 공개경쟁입찰 원칙을 지키지
않고 수의계약으로 기존 거래업체들에 공급권을 줬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귀찮다는 이유로 가격 비교도 하지 않는 구매관행으로 UGAP의 매입가격이
시중 일반 소매상 가격보다도 비쌌던 것으로 나타났다.

컴퓨터구입과 관련해서는 용도심사도 없이 최신형 모델에 옵션까지 첨가한
고급품을 사들이는 선심도 아끼지 않았다.

자동차의 경우는 외국업체를 무조건 배제하고 자국 자동차 업체에만 공급권
을 준 국수주의 관행으로 국가예산 탕진에 한몫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정부는 즉시 공공구매청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제정하고 모든 물품구매는 공개입찰로 하도록 못박았다.

또 물품선정도 구입처가 요구하는 모델이 아니라 가격과 품질, 용도를
기준으로 하도록 정했다.

이 규정을 도입하자 1년만에 14억프랑이란 예산이 절감됐다.

그러나 정부는 이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관습화된 방만함을 일소키 위해 내부조직도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다른 공공기관에 간접적 경고를 발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지난주 공공물품구매청 공무원 대량해고안이 알려지자 UGAP 하급공무원들은
고위층의 방만경영 책임을 자신들이 떠안게 됐다며 재경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전체적 여론은 이를 계기로 공무원사회의 방만주의(Laxism)가
일소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 파리=강혜구 특파원 hyeku@coom.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