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디자이너 김현선(42)씨는 여러 호칭으로 불린다.

박사님 교수님 소장님.

그는 디자인업계에선 드물게 미술학 박사학위를 갖고 있다.

게다가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환경설계세미나를 8년째 강의해온 교수다.

자기 이름을 딴 "김현선 디자인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니 소장이기도 하다.

물론 직함의 개수가 성공의 잣대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분야에서 분명히 "일가"를 이뤘다.

김 소장 전공은 환경디자인.

삭막한 콘크리트 도시공간이 그의 디자인 대상이다.

그곳에 아름다운 선과 색채를 가미해 조화로운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게
그의 일.

"기능위주의 도시공간에 감성을 이입하는 연출"이라고 그는 정의한다.

죽어있는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인 셈이다.

그의 손길이 닿아 다시 태어난 공간은 한두 곳이 아니다.

청와대 "안가"는 효자동 사랑방으로, 잿빛의 울진원자력발전소는 환경친화적
공간으로 변모했다.

올림픽공원의 무뚝뚝한 연돌은 부드러운 조형물로 탈바꿈했다.

베이지색 빛깔이 은은히 펼쳐진 산본 신도시 아파트 숲도 그의 손을 거친
것.

서울 강남구의 가로포장과 사인시스템, 분당 삼성플라자 가로장치물,
서인천 복합화력발전소 연돌 등 그의 작품은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그의 작은 손은 거대한 도시를 아름답게 변신시키는 "마술의 손"
으로 통한다.

김 소장의 이력은 다소 종횡무진이다.

그는 지난 80년 서울대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곳은 대한항공.

특수사업부에 근무하며 신규 프로젝트를 주로 담당했다.

그러다 1년만에 진로를 확 바꿨다.

여고시절부터 동경하던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입학한 것.

대학원에서 올림픽공원 디자인 프로젝트 등에 참여하며 "바로 이거다"라는
감이 왔다.

그 감을 현실화하기 위해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도일.

하늘에 별 따기라는 도쿄예대 박사학위를 딴 것은 지난 91년이었다.

환경디자인 쪽에선 한국 최초의 박사이기도 했다.

당시 일본 최대의 공간디자인 회사인 GK세케이에 스카우트돼 일하던 그에게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92년 한국에선 처음으로 주택공사가 산본 신도시 색채디자인을 현상 공모한
것.

여기에 "혹시나" 하고 응모한 것이 "역시나"로 최우수 당선됐다.

이 프로젝트가 "김현선 디자인연구소"를 출범시켰다.

그건 한국에도 "환경디자인"이 본격 상륙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프로젝트 주문이 쇄도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김 소장의 요즘 관심은 환경디자인과 문화상품의 접목.

"어떤 거리나 지역의 이미지를 종합 연출하는 환경디자인은 문화상품 등과
연계돼야 관광자원이란 가치로 승화될 수 있지요"

최근 수원 성곽인 화성의 심볼마크를 디자인하면서 캐릭터 상품을 함께
내놓은 것도 그런 이유다.

서울 성북구 아리랑길을 "영화의 거리"로 만드는 일이나 정동길 남산길
등을 서울 역사문화탐방로로 바꾸는 작업에서도 이를 염두에 두고 있다.

< 차병석 기자 chab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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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 포인트 ]

(1) 자신만의 색깔을 가져라

김 소장은 지난 92년 ''산본 신도시 색채 계획안'' 당선으로 한국에서 인정
받기 시작했다.

그에게 색채란 자신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자기만의 색깔을 가질 때 세상에 떳떳이 설 수 있다는 것.

각 지역의 문화적 특색을 살려 개성있는 연출을 과감히 시도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색깔''이 분명하기 때문.

(2) 항상 변신하라

생활과학대 졸업-대한항공 입사-환경대학원 석사-예술대학 미술학 박사.

다채로운 학력이다.

그는 "다양한 인생경험은 언제나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원천이 됐다"
고 말한다.

서울에서 열리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휘장과 엠블럼 디자이너로
환경디자인 전문가 김 소장이 선정된 것도 그런 변신 노력의 덕택이었다.

(3)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라

김 소장은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학교에 다닐 때나 직장 생활을 할 때도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어떤 일이든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순간마다 충실히 하는 것이
어설픈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게 그의 믿음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