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만 < 주미 한국상의 회장 >

무슨 일을 추진하건 간에 뚜렷한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바로 세워야 한다.

이것은 하나의 상식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노력이 헛일에 그칠 수 있다.

요즘 한국에서 추진되는 구조개혁을 지켜보면 걱정스럽다.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기업과 금융기관 등이 앞다퉈 추진하고 있는 개혁
작업을 보노라면 마치 개혁 자체가 목표인 것처럼 돼 있어서다.

그래서는 안 된다.

개혁은 조직이나 사회가 더욱 능률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저 기구를 축소하고 종업원 숫자나 줄이는 개혁은 의미가 없다.

조직을 효율적인 유기체로 탈바꿈시키는 것이어야 진정한 개혁이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개혁 담당자들에게 일깨워주고 싶은 것이 있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가 주장한 80대 20의 법칙이 그것이다.

"최소 노력의 법칙" 또는 "불균형의 원칙"으로도 불리는 이 법칙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원인과 결과, 투입량과 산출량, 노력과 보상간에는 80대 20의 법칙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1백을 투입했다고 할 때 그 중 상위 20이 80에 해당하는 성과를 내며,
나머지 80은 고작해야 20의 결과를 낼 뿐이라는 얘기다.

파레토가 사회 각 분야의 사례들을 통계를 통해 실증적으로 분석한 이
가설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하버드대학의 지프 교수에 의해 완성됐다.

지프 교수가 조직 경영에 이 가설을 적용한 결과 미국 기업과 사회의
효율을 높이는 데 큰 효과를 거둔 것이다.

어떤 조직이건 20% 정도의 엘리트 집단이 80% 가량의 결과에 기여하고,
나머지 80%의 구성원은 단지 20% 안팎의 결과만을 내고 있음은 우리 주변을
둘러봐도 금세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법칙은 비단 조직의 원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의 마케팅에도 적용된다.

기업들을 들여다보면 잘 팔리는 20%의 제품이 총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익 구조를 보더라도 상위 20%의 제품이 회사 이익의 80% 이상을 내고,
나머지 80%의 제품은 그저 구색만 갖추고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미국 정유회사들의 경우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유중 옥탄가 93짜리 고급
유종은 판매량이 전체의 20%도 되지 않지만, 이익의 80% 이상이 여기에서
나온다고 한다.

반면 옥탄가 87짜리 보통 휘발유는 판매량이 80% 가까이 차지함에도 마진이
아주 박해 이익 기여율은 20%가 못 된다는 게 정설이다.

주유소들은 어차피 이익에 기여하지 못하는 보통 휘발유는 되도록 값을
싸게 매겨 손님들을 끌어들이는 데 이용하며, 대신 고급 유종의 값을 높여
이익을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기업들은 바이어 관리 등 판매 전략을 수립할 때도 80대 20의 법칙을
적용해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관리해야 될 바이어가 너무 많을 경우 매출의 80%에 기여하는 상위 20%를
제외한 나머지 바이어들은 선별해서 정리하는 식이다.

미국 IBM사가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데 이 법칙을
적용해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유명한 사례다.

IBM 경영진은 개발한 소프트웨어가 너무 잡다하게 많아 제품 관리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자 매출의 20%에만 기여하는 하위 80%의
소프트웨어를 정리함으로써 오늘날 컴퓨터 제왕으로 불리게 된 기반을 다진
바 있다.

이는 사회의 다른 현상에서도 폭넓게 적용될 수 있다.

심지어 사회적으로도 20%의 운전자가 80%의 교통사고를 낸다고 한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50%를 투입하면 50%의 결과가 나온다고 하는 일견
논리적이고 민주적인 듯한 사고 방식에 젖어 있는 것 같다.

이는 매우 부정확하다.

이런 사고 방식으로 개혁을 추진한다면 큰 낭비가 빚어진다.

사회 전체가 20%의 투입으로 80%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바꾸어
말하면 투입물량중 80%는 20%의 결과만을 가져오는,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인
덩어리라는 얘기가 된다.

개혁의 메스는 바로 이 부분에 집중돼야 한다.

투입 물량의 80%가 낭비 요인이라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말해서 각 조직내에
개선의 여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개혁의 방법론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명백해진다.

첫째, 새로운 시각으로 자원의 재분배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비생산적, 비능률적,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인 인적 물적 자원은 과감히
정리하거나 효율적인 용도로 재분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확한 통계와 기업의 회계가 선행돼야 한다.

둘째, 효율적인 20%를 극대화하는 쪽에 개혁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개혁에는 모름지기 분명한 전략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 전략으로 80대 20의 법칙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