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금융기관들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지난 열흘동안 이어진 삼성차 해법찾기를 지켜본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대목이다.

정부와 정계 재계가 삼성자동차를 놓고 엄청난 소동과 논란을 벌이고 있을때
당사자인 채권금융기관들은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삼성그룹이 지난달 30일 법정관리를 신청했을 때에도 채권단은 "구체적으로
통보받은게 없어 할 말이 없다"고만 말했다.

이수빈 삼성구조조정위원장이 "사재출연은 삼성생명 4백만주로 끝"이라고
밝혔을 때에도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정치인과 관료, 기업인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떠들고 있었는데도 채권단은
바라보기만 했다.

채권단의 이같은 행태는 물론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한보철강이 부도났을 때에도 채권단은 침묵을 지켰다.

기아자동차 부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기업과 정부가 어떻게 하는지 처분만을 기다렸다.

이같은 순응체질이 하루아침에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은행원들이 실직으로 거리를 헤매고,은행을 살리기 위해
엄청난 세금이 투입된 지금에 와서는 금융기관들이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최소한 "국민의 혈세를 더이상 낭비할수는 없다"는 투지만이라도 비춰줘야
했다.

삼성차 해법찾기는 분명 주역과 조연이 뒤바뀐 "뒤틀린 드라마"였다.

경제논리로 보면 삼성과 채권금융기관이 주연배우가 돼야 한다.

삼성에 "돈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고 다그치는 역할을 채권금융기관들이
했어야 했다.

그러나 해결사를 자처한 주연배우는 정부였다.

채권단은 무대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정부는 물론 이번 사태에 개입할 자격을 충분히 갖고있다.

기업구조조정의 핵심사안으로 추진해온 삼성차 처리방안은 국가신용도와도
직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삼성생명 상장여부도 정부가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당사자는 어디까지나 삼성과 채권금융기관이다.

정부의 역할은 걸림돌을 치워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번 사태로 한국이 아직도 "외국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이상한 나라"로
비쳤을까 걱정이 앞선다.

"왜 사업성도 없는 삼성차에 돈을 빌려줬느냐"는 채권단 책임론은
놔두더라도 "왜 변한게 없느냐"는 점만큼은 분명히 따지고 넘어가야 한다.

< 현승윤 경제부 기자 hyuns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