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만들어간다.

꿈을 이루지 못했을 땐 ''망상가''라는 비아냥을 받는다.

그러나 큰 일은 항상 허무맹랑한 것처럼 보이는 ''꿈''에서 싹을 잉태하곤
한다.

하늘을 난다든지, 달나라 여행을 간다든지, 2억만리 떨어진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꿈에서 시작됐다.

''주가 1,000시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자본시장의 오늘도 불과 1년전만 해도 꿈꾸기
어려운 일에 속했다.

국가전체가 부도가 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과 절망감 속에 종합주가지수는
280까지 폭락한 상태였다.

그런 때 주가 1,000시대의 도래를 예상하고 1,000시대를 맞을 준비를 한
이는 정신나간 사람으로 치부당하기에 딱 알맞았다.

당장 내일 일을 알 수 없는데 웬 뚱딴지 같은 얘기냐며 몽상가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차가운 얼음장 밑에서도 봄을 예고하는 개울물이 흐르고 있음을 감지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고생''이 ''소쩍새의 울음''이 되고, 한여름날 ''천둥소리''
가 되고, 초가을날 ''찬서리''가 돼서 환한 ''국화꽃''을 피워냈다.

마치 진흙밭이 된 연못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것과도 비슷하다.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김종환 대한투자신탁 사장, 변형 한국투자신탁 사장,
박현주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 김헌수 메릴린치증권 이사, 그리고 수많은
펀드매니저와 무명용사(개인투자자)들.

정부 쪽에선 김대중 대통령, 이헌재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등.

이들은 대다수 국민의 ''절대회의론''에도 꺾이지 않고 ''주가 1,000시대''의
꿈을 꾸어온 선각자들이다.

그들은 남들이 ''안된다''고 비관론에 빠져있을때 ''된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몸에 채찍을 대고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밤낮없이 뛰어왔다.

1년반 전으로 되돌아가 1997년12월12일을 보자.

이날 종합주가지수는 350.68을 기록했다.

IMF(국제통화기금)행 열차를 타기 직전인 그해 8월에 비하면 주가는 반토막
아래로 떨어졌다.

꼭 8년전에 이뤄졌던 ''12.12조치''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주가는 1층을 지나 지하2,3층까지 곤두박질 친 상태였다.

지하실이 앞으로 몇층이나 더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전깃불도 꺼져 공포감만이 가득찬 시절이었다.

바로 그때 대한투자신탁은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한두푼도 아니고 무려 2천억원어치나.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도저히 감행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김종환 사장을 정점으로 하는 고유주식 운용팀은 "공포감 속에
주식을 사는 것이 리스크가 커 보이나 실제로는 위험이 가장 적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주식에 투자한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폭락장세
뒤에 찾아오는 급반등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피터 린치(Peter
Lynch)의 말만이 실낱같은 위안거리였다.

해가 뜨려면 아직도 몇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는 한밤중이고 바깥바람이
거센 속에서 성냥개비를 그어댄 것이다.

그로부터 1년 뒤인 98년12월.

박현주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은 그때까지 생소했던 ''뮤추얼펀드''라는 것을
팔기 시작했다.

주가가 두달전부터 오름세로 돌아섰다고는 해도 아직 긴가민가하던 때였다.

특히 뮤추얼펀드는 1년동안 맡긴 돈을 찾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그 누구도 뮤추얼펀드의 성공을 자신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는 김영일(미래에셋자산운용 주식운용2본부장)이라는 스타를
만들어내면서 데뷔전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유추얼펀드 수익률이 두각을 내자 강남권의 알부자들이 몰려들이 시작했고
다음 펀드에 가입하기 위해 예약을 해두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뮤추얼펀드 돌풍을 일으킨 장본인이 됐다.

이익치 회장도 일찌감치 ''주식 1,000시대''를 예언한 주인공.

그는 지난 3월2일 ''바이코리아''란 거대한 아이디어를 들고 나왔다.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주식시장을 활성화시킬 수 밖에 없다. 한국경제
를 확신한다"며 바이코리아판더를 3년안에 1백조원의 거대한 펀드로 만들겠
다고 목청을 높였다.

당시 주식형수익증권 전체잔액이 9조원도 못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1백조원이란, ''주식의 주자도 모르는 돈키호테가 나타나 설쳐댄다''는
비웃음이 여의도에 넘쳐흘렀다.

이 회장은 현대건설 등에 오래 근무했지만 금융.증권쪽 경험은 없었기
때문에 모두가 입방아질에 바빴다.

그러나 그는 이런 비웃음을 일거에 잠재웠다.

''되는지 안되는지 두고 보면 안다''며 엄청난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국경제를 살리자며 애국심에 호소하는 광고가 전파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
에 스며들면서 바이코리아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판매한지 12일만에 1조원을 돌파하자 사람들의 생각도 차츰 바뀌었다.

그래도 ''아직은''이라는 시각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다시 16일만에 1조원을 더 보태 2조원으로 늘어나자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바이코리아가 주식을 매수하면서 주가가 상승세를 타자 ''이익치 신드롬''
이라는 말이 여의도 바닥을 떠돌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반은 시인하면서도 반은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

바이코리아는 7월8일 현재 9조원을 넘어섰다.

판매한지 넉달만에 이룬 쾌거다.

한달에 평균 2조3천억원의 자금을 끌어모은 셈이다.

이 회장은 이제 더이상 돈키호테가 아니라 한국경제를 살린 선각자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아직도 갈길이 멀다고 한다.

"IMF위기때 우리가 당한 것은 1천억달러에 달하는 거대한 펀드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이코리아가 1백조원(약 8백50억달러)에 달할 때 헤지펀드가 어떤
투자전략을 구사해도 한국증시는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 IMF위기 때 붕괴됐던 중산층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길도 주식형펀드와
주식투자가 유일한 길이라고 덧붙인다.

이 회장은 "종합주가지수는 올 연말에 1,200포인트, 내년에는 1,700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1,000고지를 밟은 이제 그의 예지력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이 완전히
사라졌다.

변형 한국투신사장도 봄부터 주가 1,000시대를 예감하고 주변을 닦달해왔다.

최근 들어선 더욱 공격적인 전략을 폈다.

한국투신은 지난 6월중순 서해안에서 남북 무력충돌이 일어났을 때 주식을
1천7백억원어치나 사들였다.

당일 주가하락폭을 줄인데 이어 다음날부터의 주가상승을 이끌었다.

삼성자동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7월2일에도 한국투신은 ''외롭게'' 순매수를
외쳐 주식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변 사장은 "투신과 외국인과의 샅바싸움에서 투신이 승리한 만큼 종합
주가지수는 700선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며 "올 연말에는 1,300, 내년말
에는 1,600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김헌수 메릴린치증권 이사도 ''주가 1,000시대''를 확신한 사람이다.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주식투자를 직접하는 펀드매니저가 아니라 시황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이다.

그러나 그느느 외국인들이 한국주식을 사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 이사는 종합주가지수가 700선을 돌파하면서 ''증시과열.과속.버블론''이
제기될 때마다 "그렇지 않다"고 명백하게 밝혀왔다.

한국 기업들이 인원감축과 부채축소 및 과잉설비감축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다운사이징(Downsizing)과 디레버리지(De-Leverage)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수익이 폭발적으로 증가(explosive increase)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앞에서 거론한 사람들이 주식시장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면 김 대통령과
이 위원장은 측면지원자라고 할 수 있다.

김 대통령은 취임이후 금융.기업구조조정이라는 원칙을 흐트러짐없이
일관되게 추진한데다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으로 이어지는 주변 4강국
외교를 성공적으로 일궈냄으로써 경제가 국제정치, 특히 남북한 긴장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고 돌아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홍찬선 기자 hcs@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