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현 < 문화환경 대표 kwooz@torc.net >

과거 공무원은 정년이 보장되고 그런 대로 안정된 직업이었다.

공복으로서 직무에 충실한 이들이 대다수였겠지만 시간만 때우는 무사안일형
공무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IMF를 겪으면서 구조조정이 이뤄져 능력이 없거나 게으른 공무원은
정년보장도 어럽게 됐다.

그래선지 공무원들이 전보다 부지런하고 친절해진 것 같다.

그 중 지자체 공무원들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민선 2기의 지방화시대에 걸맞는 지역 특성화사업 때문이다.

특성화 사업은 문화관광산업 관련 분야가 주류를 이룬다.

이미지 부각을 위한 CI를 비롯해 농특산물의 포장디자인 통일화 사업,
캐릭터 개발을 통한 수익증대 사업, 21세기형 문화관광사업, 애니메이션과
영화 멀티미디어 등의 도시형 문화산업 육성 등 이름만 들어도 첨단이다.

지자체들은 경쟁적으로 이런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전문성이 없는 지방공무원들이 첨단산업에 대해 배워 가면서 일해야 하니
얼마나 고생스러울까.

하지만 배워서 될 것이 있고 안될 것이 있다.

결국 다른 지자체의 전례를 모방하거나 흉내내는 경우가 많다.

홍길동 캐릭터가 뜬다니까 너도 나도 "홍길동 같은 것"을 만들고, 농특산물
포장이 중요하다니까 모두 그리로 몰려간다.

"우리도 디즈니처럼 만화산업을, 일본이나 미국처럼 영화산업을..." 이런
식의 논리로 순박한 주민들을 설득시키는 모양이다.

이렇듯 전국이 영상이다 애니메이션이다 문화상품이다 떠벌이며 같은
제목으로 경쟁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돼지 값이 오른다니까 너도나도 돼지를 키우다가 값이 폭락해 모두 손해를
보는 일이 연상된다.

시대 흐름을 정확히 읽지 못하는 단체장들의 의욕이 공무원들을 부지런한
머슴으로 만들기는 했어도 이른바 신지식인형으로 개조시키지는 못한 것
같다.

부지런한 것과 아이디어를 살리는 것은 별개이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개성"을 상품화하는 것이 문화산업의 기본이다.

지역마다 내려오는 유구한 역사와 고유문화야말로 지자체의 보물이다.

바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있는 것을 잘 가꾸는 일도 중요하다.

기왕 열심히 일하려면 창의적인 일에 헌신토록 해야 보람도 있을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