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춘추의 류용현 변호사.

그에겐 별난 버릇이 하나 있다.

일에 열중하다가도 갑자기 지그시 눈을 감는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 몇번 숨을 깊이 들어 마신다.

부드럽게 숨을 내뱉으며 두 주먹을 가볍게 쥔다.

그러나 정확히 5분 후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그가 개발한 독특한 명상법이다.

하루에 보통 2~3차례 반복한다.

마음을 추스리고 나면 평정심이 생기고 일에 대한 집중력도 높아진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이같은 버릇이 생긴 것은 대략 1년 6개월전이다.

정확히 말하면 서울지방법원 민사25부 판사로 일하면서부터다.

민사25부는 일명 "언론전담부"다.

언론소송의 대부분이 이곳에 배정돼 붙여진 별칭이다.

언론소송은 사회적으로 이슈화된 것들이다.

언론은 공익을 위해 사건을 보도한다.

좋지 않은 사건에 이름이 거명된 사람들은 보도가 허위라고 주장하거나
인격권이 침해당했다고 소를 제기한다.

소송당사자도 정치인이나 사회 저명인사들이 상당수 차지한다.

재판관의 고민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소송 의뢰인이 사회지도층 인사여서만은 아니다.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해서다.

언론의 자유와 개인의 사생활보호는 서로 상충되는 경우가 많다.

획일적으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개별사건마다 법의 잣대가 달라질 수도 있다.

모든 사건에서 언론의 자유가 개인의 인격권을 앞선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공무원 정치인등 공인의 경우 사건이 그 공적영역에서 일어난 행위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선을 긋기도 쉽지 않다.

더 깊이 들어가면 공익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할 때도 있다.

그가 판사로 재직중이었던 97~98년은 한마디로 급변기였다.

치열하게 전개됐던 대선경쟁 만큼 여야간, 정치인과 언론사간의 고소.고발도
그 어느때보다 많았다.

김대중 대통령, 최장집 전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박경식
G클리닉원장 등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람들이 소송당사자였다.

챙기고 따져봐야 할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퇴근할때면 어김없이 그의 두손엔 사건관련 참고자료들이 들려 있었다.

끝없이 밀려드고 일속에 파묻치지 않고 냉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는
집중력과 평정심이 필요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 그만의 독특한 명상법이다.

류 변호사는 사건의 본질을 파악해 명석한 판결을 내렸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판결의 분명한 기준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와 개인의 인격권은 다같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이다.

충동할때는 법률적 판단에 의존하기보다 서로 한발 양보해 당사자들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소신이다.

합의가 안될 경우 류변호사의 판결은 단호하다.

언론의 보도로 얻을 수 있는 이익과 개인의 피해를 따진다.

그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합이 플러스일 경우 일단 언론이 유리하다.

그렇지만 공익이 목적이라지만 보도 방법론에는 문제가 없는지를 고려한다.

물론 공익은 오로지 사실일 경우에만 해당된다.

익명성이 보장돼도 충분한데 시청율을 의식해 실명으로 보도하지는
않았는지, 보도내용이 너무 선정적이지 않았는지, 범죄혐의 보도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피의자를 다뤄야 한다는 등등.

류 변호사는 판사 재직시 숱한 사건을 담당했지만 재판내용에 대해서는
함구로 일관한다.

불가피하게 법이란 잣대를 동원했다는 생각에서다.

무엇보다도 심리과정의 세부적인 사안들이 소송당사자들의 명예에 치명적일
수도 있어서다.

류 변호사는 올초 판사를 그만두고 법무법인 춘추에 들어갔다.

보다 체계적으로 언론소송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판사라는 판결자의 시각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사건을 다루면서 시야를
넓히자는 생각도 전직에 일조했다.

피해를 당하고도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일반인들에게도 인격권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는 요즘 새로운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폭주하는 업무속에서도 짬을 내 언론관련 상담에 열중이다.

이는 언론소송이 폭주하고 손해배상 요구액도 늘어나는 추세여서 소송을
막을 수 있는 사전예방활동이기도 하다.

언론사에겐 위법에 휘말릴 소지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피해자에겐 취재시
대처 요령을 알려주고 있다.

표현의 자유화와 인격권을 서로 이해한다면 법정판결이란 파국은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의 왕성한 활동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그래서 류 변호사의 "명상"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을 버릇으로 남을 것 같다.

< 김태철 기자 synergy@ >


[ 특별취재팀 = 최필규 산업1부장(팀장)/
김정호 채자영 강현철 이익원 권영설 이심기(산업1부)
노혜령(산업2부) 김문권(사회1부) 육동인(사회2부)
윤성민(유통부) 김태철(증권부)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