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도입시기를 놓고 논란을 빚어온 제조물책임법(PL법)이 13일 마침내
입법예고됐다.

제조물책임제도는 제품의 결함으로 소비자가 신체 또는 재산상의 손해를
입었을 경우 제품을 만든 사람에게 거의 무조건 손해를 배상토록 하는 매우
강력한 소비자보호제도이다.

이 법안은 82년 의원입법 형태로 처음 발의됐으나 시기상조라는 판단에
따라 입법이 유보돼오다가 한국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을 계기로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돼 마침내 정부의 입법예고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재정경제부는 소비자단체와 경제단체 등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어
정부안을 확정, 올 가을 정기국회에 상정해 통과시킨 뒤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01년부터 시행할 방침이라고 한다.

하지만 PL법 제정 및 시행에는 한국적 현실을 고려해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물론 원칙적인 면에서 소비자 피해구제의 영역 및 창구 확대가 필연적
추세라고 볼 때 정부의 적극적인 소비자보호 의지는 높이 사주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국내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커 소비자단체와 업계간에는 물론
정부부처간에도 논란이 돼온 이 제도를 하필이면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서둘러 도입한다는 것은 우리의 기업현실을 도외시한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PL법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사안의 우선순위를 고려해야
하며 도입한다 해도 그 시기를 잘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다.

설령 이 제도를 이번에 꼭 도입해야 한다 해도 정부가 내놓은 법안의 내용은
문제가 많다.

특히 제조자에게 거의 "무한책임"을 지도록 한 것은 일본이나 유럽의
PL법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제조물의 범위를 너무 넓게 잡아 거의 모든 산업이 PL법의 적용을 받게
돼 국내산업계에 주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사고원인이 규명되지 않을 때는 하청업체인 중소기업에 상대적으로
큰 책임이 전가될 소지가 많은데도 이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거듭 강조하지만, 소비자보호의 이상에 치우쳐 기업현실을 무시한 결정이
내려져선 안된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기업들은 개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황이다.

제살을 도려내는 구조조정으로 경쟁력강화에 모든 역량을 결집하고 있는
때에 기업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행동은 정부든 소비자든 삼가는 것이 좋다.

적어도 우리경제가 IMF관리체제를 벗어나 안정궤도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이 제도의 도입을 유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