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열풍이 벤처금융의 활성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블랙엔젤이 판을
치는 탓만이 아니다.

엔젤에 대한 인식수준이 낮고 관련 정책도 허술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벤처 인프라 정책이 실종됐다.

자금을 쏟아붓는 데만 열심이고 벤처금융과 같은 인프라 구축은 뒷전이다.

<> 엔젤도 엔젤답지 못하다 =엔젤들이 투자하는 벤처기업은 정부나
벤처캐피털로부터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뚜렷한 매출실적을 내지 못한 창업초기 기업에는 엔젤들이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저위험 고수익만을 쫓는 한국형 엔젤의 모습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고희동 박사는 "미국의 엔젤은 "보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지만 한국에서는 수익을 우선 따진다"며 "고수익은 결과일뿐
목적이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엔젤투자가 투기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지난해 충북엔젤클럽으로부터 투자유치를 추진했던 반도체장비 업체인
포닉시스템.

이 회사 정기로 사장은 투자설명회후 한명의 엔젤클럽 회원과도 접촉하지
못했다.

이후 5~6개 창투사를 찾아갔으나 액면가(5천원) 투자를 고집하는 통에
투자유치가 진전되지 못했다.

정 사장은 최근에야 성도회(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임원출신 모임)의
멤버들로부터 2억4천만원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지금은 돈을 대주겠다는 벤처캐피털들이 줄지어 있다고 한다.

<> 기업가치 평가기준이 없다 =엔젤클럽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지만
투자실적은 미미한 수준이다.

엔젤과 벤처기업간 눈높이 차이 탓이다.

기업가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기준이 없어서다.

엔젤이 기업가치를 평가할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데다 이를 보완할 공인된
평가모델이 없는게 현실.

중기청이 지난해 정부자금으로 기술신보를 통해 이같은 평가 기법을 개발
하긴 했다.

그러나 창투사가 보유한 벤처기업 주식의 가치산정 등 일부에만 쓰이고
있다.

기술및 기업가치 평가기관의 육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 투자회수가 제한돼 있다 =엔젤이 투자액을 환수하는 길은 현재 투자기업
이 코스닥에 등록하기를 기다리는 것.

코스닥 등록이 임박한 기업에만 엔젤자금이 몰리게 마련이다.

M&A 및 미등록 벤처기업 주식거래시장 활성화 등을 통해 엔젤자금 회수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한엔젤클럽이 최근 벤처M&A 마트를 개설한 것은 그런 점에서 모델이 될
만하다는 평가다.

최근들어 인터넷에 잇따라 개설되고 있는 비상장기업 주식거래의 장도
지원과 함께 건전성 확보를 위한 감독이 병행돼야할 것으로 보인다.

<> 벤처금융의 틀을 짜라 =벤처정책에 벤처금융을 육성하는 종합적인 대책이
없다는 지적이다.

엔젤 벤처캐피털 정책금융이 "따로국밥"식으로 벤처기업의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다.

창투사의 한 사장은 "미국과는 달리 엔젤이 투자하는 기업이 벤처캐피털의
투자대상과 별 차이 없다"며 "벤처금융 수요자(벤처기업)의 성장단계별로
공급자의 역할이 교통정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수익률을 제시, 투자자를 현혹하는 벤처캐피털이나 블랙엔젤의 모럴해저드
를 철저히 감독하는 벤처금융 감시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벤처투자 활성화라는 명분에 밀려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엔젤에 대한 세제지원도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박용규 수석연구원은 "정부가 종합소득금액에서 공제하는
투자액의 비율을 현행 20%에서 30%로 확대키로 한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주식의 양도차익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기위해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하는
기간(5년)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 일반인들의 벤처투자 행태 달라져야 =우리기술투자의 곽성신 사장은
"가정주부 등 전문성이 부족한 엔젤들은 창투사의 전문가가 직접 투자대상을
고르는 창업투자조합에 출자하는게 낫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엔젤투자는 5~7년은 내다보고 해야 한다"며 "창업투자조합과 같은
벤처펀드가 일반인을 공모할 때는 위험성을 확실히 알리고 가입자를 일정
기준에 따라 제한하는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엔젤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도 벤처펀드에 출자할 수 있는 엔젤의 자격을
고소득자로 제한하고 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 오광진 기자 kjo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