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호는 또 침몰하는가.

누구도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은 심상치 않다.

워싱턴과 월가의 전문가들은 한국정치가 경제를 옥죄고 있다고 읽고 있다.

밀고 당기는 내각제문제는 한국 정치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으며 이를
틈타 나라의 앞날이야 어떻게 되든 내각제를 터밭으로 내 몫만 챙기면 그만
이라는 각 정파의 정치적 모럴 헤저드가 극에 달했다는 지적이 많다.

김영배 전 국민회의 총재대행에 대한 전격적 해임은 김대중정부의 정치적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보여준 단면이었으며 결국 이같은 정치상황발전은
한국경제장래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익명을 요구한 한 월가
펀드매니저의 평가다.

그는 "향후 월 스트리트의 관심은 한국의 정치축구공이 어디로 튀는가에
쏠릴 것이며 그 향배에 따라 한국시장에 또 다른 양떼현상이 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주가가 수직상승, 종합주가지수가 1,000선을 넘나들고 있으며
많은 국제투자자들이 이익실현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점도 그 같은
개연성을 소홀히 취급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 이라는 게 한국을 잘 아는
또 다른 월가 펀드매니저의 덧붙임이다.

주가가 돈 홍수에 밀려 수직 상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호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수출은 아직도 정상궤도를 찾지 못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문이다.

펀더멘탈이 받쳐주지 못하는 금융장세가 바로 거품시장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한국호가 또 침몰할 수도 있다는 해외의 경고는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

미셀 캉드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한국이 자기만족의 위기(crisis
of complacency)에 처해 있다"고 역설한 것은 그 서막이었다.

보다 선진화된 경제로 도약하려는 문턱에서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지적을 받았던 한국경제가 이번에는 위기봉합을 위한 마개를 채 막기도 전에
또 다른 샴페인 터뜨리기에 바쁘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18개월 전 한국의 외환위기와 더불어 다 죽은 것처럼 여겨졌던 한국의
반개혁 세력들은 이제 다시 힘을 결집, 저항하고 있으며 우리는(IMF,세계은행
등) 이들과 백병전을 치르고 있다. 아직까지 밖으로 떠들어 댈만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가 위기를 극복했다는 인식은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이는 한국의 구조개혁을 원점으로 돌려놓은
결과를 빚을 수 있다."

제임스 울펜손 세계은행 총재가 지난달 캉드시 IMF총재, 로버트 루빈 전
미재무장관과 함께 브레튼우즈 위원회 연례회의를 끝내고 기자들과 만나 던진
우정어린 충고다.

이 같은 외교적 수사의 이면에서 이들이 보다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은 살아날 가망성이 없는 기업에 대한 조속한 퇴출이라는 게 워싱턴의
비밀 아닌 비밀이다.

국제금융인들은 벌써 퇴출되었어야 할 한국기업들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는데 대해 실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느긋해진 한국이 마이동풍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고 이같은 자세는
결국 한국의 개혁의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과거의 부실대출 악습은 아직도 한국금융계를 병들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
12일자 뉴욕타임즈는 ''기다려라, 그러면 크게 바꾸지(개혁하지) 않아도 될 수
있다''는 행동방식이 기업과 금융계에 만연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근 워싱턴을 방문한 김용환 자민련부총재는 현 정치체제가 좋은지
내각제가 좋은지 실험해 보자고 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정치실험이나 하고 앉아 있을 여유가 없다.

더욱이 개방과 정보화로 풍랑이 심해진 바다에 떠 있는 한국호를 담보로
도박을 벌일 때는 결코 아니다.

< 워싱턴특파원 양봉진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