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문명은 항상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낳는다.

기원전 아득한 옛날에 존재했던 인류문화의 보물단지이고 보면 그럴만도
하다.

사막의 모래속에 수천년간 묻혀 있던 유적들이 햇빛을 보면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는 너무 많이 등장하여 이젠 흥밋거리가 못된다.

클레오파트라 역시 나일강유역 문명사극에서 이름이 너무 팔렸다.

인류 최고의 문명발상지를 스크린에 담아 손님을 끌기위해선 좀 더 색다른
주인공이 필요했다.

그런 고심 때문인지 할리우드의 이번 선택은 좀 엉뚱하다.

살아있는 인물 대신 죽어있는 미라를 택한 것이다.

미라를 주인공으로 삼은 서양영화는 1932년 유니버설이 처음 만들었다.

그 후 71년까지 비슷한 내용으로 미국과 영국에서 7편이 나오다가 28년만에
첫 작품과 같은 이름(The Mummy)의 재탕이 나와 화제를 뿌리고 있다.

미라의 신원은 파라오의 애첩과 밀애를 나누다 발각돼 생매장당한 제사장-.

3천여년간 석관에 갇혀 있다가 악의 화신으로 환생하여 괴력을 발휘하는
모습이 자못 스릴을 자아낸다.

67년전에 나온 원조 미라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괴기영화 특유의 공포분위기
는 거의 없고 마냥 흥미진진할 뿐이다.

컴퓨터 그래픽 등 첨단 제작기법이 총동원돼 청소년 취향의 오락성과
눈요깃거리만 무성하다.

괴기물이 안기는 긴장감이 떨어져 정통 호러를 기대한 관객에겐 실망스럽다.

무서운 죽음의 사자가 애틋한 사랑에 빠져 있다는 스토리 설정은 역시 할
리우드다운 발상이다.

이름하여 "금지된 사랑(forbidden love)"-이 영화 인터넷 사이트에 나오는
말인데 신하와 후궁간의 위험한 사랑을 빗댄 표현이다.

사랑할 권리는 악당이라고 예외일 수 없으나 "사랑에 빠진 악마"라면 약간
이상하다.

천하에 몹쓸 귀신으로 그려 놓고 자결한 애인을 되살리려 애쓰는 모습을
부각시킨 것은 역설적이다.

그래도 괴물이 보여주는 순애보(?)는 일말의 연민을 일으켜 인간의 얼굴을
가진 미라를 느끼도록 유도한다.

기원전 유적을 무대로 삼은 역사물엔 고전미와 신비감이 있어서 좋다.

비록 오락물이고 괴기물이라 해도 아득한 태고적 역사의 자취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 최고의 영화를 누렸던 파라오의 실체를 벗긴 공로는 고고학자와
문명사가들이 세웠지만 그것을 대중속에 끌어들인 것은 작가들이었다.

거대한 고대문명의 현장을 파노라마로 펼친 할리우드의 이야기꾼들도
그 반열에 들어간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제작진은 수세기에 걸쳐 이뤄진 학문적 업적에 편승,
얼토당토 않은 오락물을 만들어 돈방석에 앉는 얌체족 같기도 하다.

비록 유물발굴의 뒷전에서 무임승차를 했지만 3천년만에 미라를 되살려
현대인을 혼비백산 시키는 상상력만은 가히 포상감이라 하겠다.

< jsrim@ 편집위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