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주혜란씨 개인의 금품수수 비리로 출발한 경기은행 로비의혹 사건은
수사 하룻만에 임창열 지사쪽으로 초점이 옮겨졌다.

임지사도 서이석 전 경기은행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검찰은 부부가 같은 건으로 사례비를 받은 전례없는 사건을 놓고 고심을
거듭한 끝에 결국 "부부 동시 사법처리"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퇴출 관련로비 사건은 단지 임지사 부부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서 전행장이 퇴출을 면하기 위해 광범위한 로비를 펼쳤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비리 연루 대상자가 확대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임지사 부부는 시나리오의 1막에 불과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 이런 관측의 근거는 대략 세가지로 모아진다.

첫째 임지사 부부에 대한 소환조사가 신속하면서도 "기계적으로" 진행된
점이다.

주씨 소환에 이어 임지사도 하루만에 검찰에 불려 나왔고 주씨 구속도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이는 두사람을 옭아맬 자료와 방증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는 얘기다.

나아가 후속 수사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둘째로는 퇴출 경기은행과 관련한 검찰의 조사가 장기간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12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수사의뢰를 받은 뒤 비리
확인 작업에 착수,지난 6월 서 전행장 등을 구속하기까지 10개월간 모든
비리를 샅샅이 뒤졌다.

올초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조사를 받은 한 은행간부가 "정말 사소한 것까지
물어보는 검찰의 조사내용에 놀랐다"고 말해 검찰의 준비작업이 치밀했음을
웅변했다.

셋째는 지난해 6월초 경기은행 임원들이 필사적으로 벌였던 은행구명
노력이 정치인과 지역 유력자에게도 펼쳐졌다는 점이다.

벌써 국회의원과 지역 정치인,지역 유력자들 3~4명의 이름이 다음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 서 전행장은 최근 법정에서 부실업체에 대출해주고 받은 사례비
2억4천8백만원중 상당 부분을 로비자금으로 썼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서 전행장은 유력 기관장뿐 아니라 지역 국회의원들의 부탁을 받고
부실기업인 S, I업체 등에게 40억~50억원의 자금을 대출해준 사실이 있기
때문에 퇴출 직전 이들 유력 인사에게 거꾸로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 주혜란씨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영장집행전까지도 알려지지 않은
채 극비리에 진행됐다.

검찰은 주씨의 구속여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영장을 청구할 방침"
이라는 말만 거듭하다가 영장이 법원에서 발부되고 난 뒤에야 영장청구
사실과 발부사실을 통고해줬다.

이와 관련,유성수 인천지검 차장검사는 오후 6시께 브리핑에서 "주씨의
혐의사실은 영장에 모두 기재돼 있으니 추후 법원 당직실에서 영장내용을
확인하라"며 "영장 청구시기는 추후 알려주겠다"고 끝까지 영장청구사실을
숨겼다.

한편, 주씨는 구속에 앞서 판사앞에서 조사를 받은 영장실질심사도 받지
않겠다고 하는 등 자신의 혐의를 시인했다.

<>. 검찰은 주씨가 서 전행장으로부터 받은 액수에 대해 묘하게 답변,
여운을 남겼다.

검찰관계자는 "3억원 이상, 4억원 미만"이라며 "액수를 특정할 수 없는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두사람의 혐의는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시간이 다소 걸릴
것"이라고 덧붙여 혹시 두사람이 받은 돈이 마구 뒤섞인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게 했다.

즉 각자가 로비를 받았는데도 서로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었으리라는 얘기다.

특히 임지사의 경우 자신은 마치 이번 사건과 무관한 듯 주장했다가
나중에 검찰조사에서 혐의사실이 드러나는 등 도덕성에 씻기 어려운 흠집을
남겼다.

임지사는 처음에는 "그런 사실을 부인에게서 전해들었으나 돈을 즉시
돌려준 것으로 안다"고 진술, 금품을 수수한 것은 주씨일 뿐 자신은
연루되지 않은 것 같은 태도를 취했었다.

< 인천=김희영 기자 songki@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