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기 박사 약력 ]

<> 56년 부산 출생
<> 77년 서울대 약대 졸업
<> 86년 미국 뉴욕주립대 의약화학박사 학위
<> 87년 한국화학연구소 선임연구원
<> 89년 SK케미칼(옛 선경인더스트리) 책임연구원 및 신약개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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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의 핵심 연구인력은 10여명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국내 최초로 신약을
개발해 낼 수 있었던 것은 서울대병원 등 외부 임상기관의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SK의 국산 신약1호 "선플라" 항암제를 탄생시키는 주역을 맡았던 김대기
SK케미칼 중앙연구소 신약개발팀장(상무.의약화학박사)은 열악한 환경하에서
최선의 신약개발 모델을 제시했다는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도 발기부전치료제 만성간염치료제 분야에서 거대히트신약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연구하고 있다"며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한국형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대장정은 이제 첫 걸음을 내 디딘 것에 불과하다고 겸손해
했다.

SK가 신약을 탄생시키는데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임상시험 대상 환자를
구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경우 위암환자는 많지만 임상시험에 대해 잘 모르거나 인식이 좋지
않아 지원자가 별로 없었다.

게다가 임상환자는 더 이상 수술이 불가능하고, 간장 신장의 기능이
정상이어야하는데 이런 조건을 가진 환자를 찾기란 더 더욱 쉽지 않았다.

그는 지난 6년간 임상시험이 순조롭게 진행된데에는 서울대병원 김노경 교수
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회고했다.

김대기 팀장 자신도 선플라 개발에 착수한 지난 90년 이래 최근까지 밤 11시
이전에 퇴근한 날을 손에 꼽을 정도로 연구에 매달렸다.

신약개발 과정만큼이나 그의 인생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부산 개금동에서 트럭운전을 하던 아버지의 2남2녀중 맏이로 태어난 그는
아주 어렵게 서울대 약대를 마쳤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난 79년 서울 방배동에 약국을 개업했다.

일이 될려고 그랬는지 한해에 아파트 한채 값을 벌었다.

그러나 "안일한 삶"에 회의가 들었다.

그는 고교시절부터 꿈꾸던 항암제 개발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82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86년 뉴욕주립대에서 항암제 관련 논문으로 의약화학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미국 ICN, 한국화학연구소를 거쳐 SK케미칼에 입사했다.

김대기 팀장은 "정부가 임상시험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13억여원을 지원해
주는 등 많은 도움을 줬다"며 "의지가 있다면 신약개발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사용, 업체의 규모에 관계없이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임종 전에 선플라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던 고 최종현 회장의 모습이
생생하다"며 "다음달 26일 1주기를 맞는 고인의 영전에 국산 1호 신약의
탄생을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고인의 유지를 살려 현재 보통 1회 투여에 2백만~3백만원하는 수입항암제
보다 10분의1 가량 싼 값에 선플라를 시판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정종호 기자 rumba@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