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파트를 분양 받은 친구의 집들이에 다녀왔다.

소설 쓴다고 평소에 친구들 모임에 잘 다니지 못하던 내가 그날은 마음먹고
나갔다.

저녁시간에 맞춰 빠듯이 돌아왔는데 기분은 상큼하지 않았다.

사촌이 논을 사서 배가 아픈 것일까?

남편이 들어오자마자 퉁명스레 말했다.

아무개네는 2억7천만원에 아파트를 분양 받았는데 두 달만에 3억7천이 됐대.

남편이 가전제품 사고 인테리어 하라고 "한 장" 줘서 인테리어에 7천 썼대.

남편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무능력하긴!

아파트 분양을 한 번 받아 보길 했나, 증권을 해서 돈을 벌어보길 했나.

나는 속으로 남편을 경멸했다.

결혼 기념일이라고 무슨 반지를 해준 적이 있나 비싼 옷을 사준 적이 있나.

당신도 그런 거 해보지 그래.

갑자기 남편이 말했다.

나는 처음에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남편의 말투가 비아냥거린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뭘 해 봐?

나는 이런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아파트 분양 받아봐.

그런 건 다 여자들이 하던데.

남편이 말했다.

난 소설가야!

원망에 불쾌감까지 겹쳐 추악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 상대에게 실망하고 원망도 하면서.

하지만 이런 괴로움이나 불쾌감이 사는 데 무슨 도움이 되나.

소설가는 "돈" 생각하면 좋은 소설을 못 쓰지.

돈이 많으면 뭘 해.

소박하게 사는 게 정신 건강에 제일 좋아.

쉽게 돈을 벌면 삶을 존중하는 마음이 사라질 거야.

그런 맘이 없으면 사람에 대한 태도도 무례해지고 결국 천박한 인생을 살게
되겠지...

그래서 다음 날 이런 생각을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정도가 좋아.

삶이 알뜰하고 아기자기 하잖아.

남편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정직한 것은 아니다.

남편에게 한 말도 그저 분위기를 좋게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무능력하다.

어쩌면 나 같은 사람은 우리 사회로부터 도태될 지 모른다.

아파트 투기가 능력인 사회와 나는 도대체 궁합이 맞지 않으니까.

소설가라는 직업이 자본주의의 속성과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 걸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