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은 옛날만큼 길진 않았지만,정말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시간은 멈추었다. 아니, 시간은 단테 카페가 문을 닫기 직전에 우리가 만났던
저녁, 카페의 벽시계가 가리키고 있었던 그때로 되돌아갔다"

프랑스 현대문학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54)는 "추억과 회상의 작가"로
불린다.

어떤 이는 "과거를 이야기하는 소설가"라고 칭한다.

그는 "개선문 광장"(68년)으로 로제 니미에상과 페네옹상, "외곽도로"(72년)
로 아카데미 프랑세즈대상,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78)로 공쿠르상을 받은
작가다.

84년에는 그의 전 작품에 대해 "프린스 피에르 드 모나코" 상이 주어져
화제를 모았다.

그의 자전적 소설 "아득한 기억의 저편"(연미선 역, 자작나무)이 국내에
소개됐다.

그는 과거에 스쳐 지나간 모든 일상이 현재의 자신을 이루고 있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이번 소설도 젊은 날의 방황과 지나간 사랑의 기억들을 떠올리는 작품이다.

원제(du plus loin de l"oubli:망각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는 독일 시인
스테판 게오르게의 시에서 인용한 것.

이야기는 중년의 소설가인 주인공 "나"가 30년전 반 베버르와 쟈클린이라는
남녀를 만났던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들은 지중해의 섬 마요르카로 떠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센 강변의 호텔
에 머물면서 카지노 도박장을 드나드는 커플.

나와 쟈클린은 남자가 도박을 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된다.

이어 나는 쟈클린의 부탁으로 그녀에게 관심이 있는 치과의사의 돈가방을
훔쳐 마요르카 섬으로 떠난다.

그러나 중간에 돈이 부족해 런던에서 여행을 중단하고 생활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날 쟈클린이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15년후 파리에서 "테레사"로 이름을 바꾼채 다른 남자의 부인이 된 쟈클린을
보게 되지만 다시 헤어진다.

14년 뒤에도 파리의 전철에서 우연히 그녀를 만난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보았는지 못보았는지를 확인하지 못한채 스쳐 지나간다.

작가는 현재의 그를 이룬 과거의 시간들을 촘촘히 기억해내는 것으로 소설을
꾸려간다.

현재와 미래만을 생각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삶의 근원과 진정한 뿌리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인간은 누구나 추억속에서 회상을 위해 산다"는 명제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