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한계(glass ceiling)가 더이상 여성을 가로막지 못하는
단계에 와 있음을 알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IBM 컴팩과 함께 세계 3대 컴퓨터회사중 하나인 휴렛 팩커드(HP)의 CEO겸
사장을 맡게 된 칼리 피오리나(44)가 뉴욕타임즈에 털어놓은 소감이다.

피오리나는 AT&T 계열사인 루슨트 테크놀로지 글로벌서비스부분사장으로
지난해 포천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기업인 50인"중 1위에
뽑혔던 인물이다.

미국 30대 우량기업의 첫여성 CEO가 된 피오리나지만 80년 AT&T에 입사하기
전까진 상당히 고생했다.

70년대초엔 HP의 운송부문 사원노릇을 했고 졸업후엔 이태리에서 영어강사로
푼돈을 벌었다.

실력을 인정받은건 루슨트 테크놀로지에서 덩치에 비해 수익률이 낮은
가전부문을 필립스에 매각하면서부터.

개인통신부문 대표를 거쳐 글로벌서비스 부문 사장을 맡은 뒤 연간
성장률을 8%에서 60%로 올린 결과 급기야 HP의 CEO로 등극하게 됐다.

피오리나의 성공은 여성으로선 드물게 영업과 마케팅부문에서 일한데다
정보통신분야를 개척해 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HP의 영입또한 2001년 6천5백억달러이상까지 성장하리라 전망되는 정보통신
시장을 겨냥한 포석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국과 달리 우리사회의 여성에 대한 벽은 아직 견고하기 짝이 없다.

기업에선 특히 더하다.

비지니스란 "밤에 남자들끼리 하는 것"이란 관행적 사고에 여성은 감정적
이고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고질화된 편견이 더해져 여성들을 배척하고
무시하기 일쑤다.

대기업의 경우 오너의 인척을 제외하면 최고경영자는 커녕 이사급 이상도
찾아보기 힘들다.

20세기 산업사회가 남성이 우위를 지닐수 있는 물리적 힘에 의존했다면
21세기 정보사회는 여성의 특질인 유연성과 섬세한 사고를 필요로 한다.

미 자영업자연맹(NFIB)의 경제분석가 윌리엄 던켈버그는 미국이 다른나라
보다 앞서가는 건 여성인력을 활용덕이라고 얘기한다.

앤디 그로브는 일찍이 "한산업이 변곡점을 통과할 때 과거의 방법을 적용
하는 사람들은 힘들어진다"고 지적했거니와 빌 게이츠 또한 얼마전 펴낸
"생각의 속도"에서 변화에 대한 순응이야말로 성공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변화에 반발하면 우리는 변화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다가올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며 변화를 포용한다면 예기치 못한 아이디어도
긍정적이며 고무적인 생각이 될 수 있다"

새천년을 앞두고 우리 기업에도 여성CEO가 등장할 수 있는 바람이 불기를
기대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