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분 < 방송 작가 >

미묘한 라이벌 의식.

연습장 앞타석과 뒤타석 사이에 흐르는 그 "미묘한 견제"가 때로는 필드보다
치열하다.

연습장 망 한번 맞춰보는 것이 소원이던 시절이 있었다.

양옆의 망이 아닌 둥그런 타깃이 그려져 있는 정면쪽의 망.

어느날 난 그 망이 출렁이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날부터 자신감이 붙은 내 샷은 더욱 가속이 붙어 빛났다.

내 드라이버의 그 "깡깡"하는 소리는 주변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고.

앞타석을 보니 동년배 여성이 드라이버를 친다.

그러나 거리는 쇼트아이언 거리.

난 더 신이 난다.

평소엔 아이언부터 연습하지만 그런 날은 드라이버부터 꺼내 샷을 뿜어댄다.

소리에 놀란 앞타석은 잠시 부러운 눈길을 보낸다.

그리고는 씩씩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경우 거리는 안나도 그나마 좋았던 방향마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난 속으로 흐뭇하다.

"이정도면 됐지 뭐"

그렇게 장타자라고 우쭐해 하던 어느날.

내 드라이버를 압도하는 소리가 뒤타석에서 들려온다.

"깡깡"하는 내 소리와는 차원이 틀린 "탕탕"하는 소리.

볼은 망을 출렁이게 할 정도가 아니라 아예 뚫을 지경이다.

날 쳐다보던 눈길들도 모두 뒤타석으로 향한다.

돌아보니 나보다 체구도 작다.

그때부터 내 "깡깡 드라이버"가 무너진다.

머리속이 복잡해지며 어떻게 스윙해야 하는지 멍해지고.

연습장에서 한번 샷이 안되기 시작하면 한시간 두시간이 마찬가지가 된다.

그런 날은 연습을 접는게 상책이다.

배운지 한달밖에 안됐지만 나보다 아이언이 잘 떨어진다거나 백발 할머니
샷이 내 거리를 능가하거나 하는 날.

그런 날은 퍼팅연습이나 하는게 최선이다.

필드아닌 연습장에서조차 이렇게 앞타석 뒤타석에 따라 "살아났다,
무너졌다"하니 누가 골프를 혼자만의 게임이라 했는가.

골프는 진정 상대적 게임인 것같다.

내가 질투심 많은 여자라 그런가.

남자들도 연습장 경쟁이 있는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