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위주의 건축계에서 26년동안 꿋꿋하게 버텨온 중견 건축가 박연심
(49)씨.

70~80년대에 여성건축가가 독자적으로 건축사 사무소를 차리고 설계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다.

"그러나 최근 3년동안엔 해마다 50여명의 여성건축사들이 배출될 정도로
건축계에 여성진출이 많아졌습니다. 84년부터는 한국여성건축가협회가
결성돼 여성건축인들의 권익과 활동반경이 크게 신장됐지요"

박씨의 건축물 설계에는 특히 주택과 중소형 건물이 많다.

주택설계는 여성건축가가 더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축주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의 건축주들이 여성건축가에 대한 은연중의 편견을 가진 탓에
중대형 빌딩이나 공연장 전시장 등의 설계를 쉽게 맡기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건축설계를 해오면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는 오히려 주어진 환경에 충실히 적응키로 했다.

여성만의 섬세한 감성을 건축에 반영시킨 차별화전략를 통해 그만의 건축
세계를 구축해 왔다.

주택과 중소규모 건물에 치우친 설계의뢰일 망정 남성건축가들이 미처
생각지 못하는 독특한 공간구성으로 건축주들을 만족시켜 왔다.

"여자들에게는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이상향의 집이 있게 마련이지요.
이런 내면심리를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가정을 꾸리고 살림을 하니까
현재 주택들이 지니고 있는 실질적 문제점을 설계할 때마다 고치도록 노력
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주거형태는 의외로 여성에게 불합리한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주부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집을 키우거나 돈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주인들의 개성과 생활
여건을 반영한 설계로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국내 건축의 가장 큰 문제는 이웃과의 단절을 조장한다는 점입니다. 높은
콘크리트 담장에 겉모양만 치장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것은 주인에게나 마을
공동체에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그의 건축관은 공공성과 자연주의다.

따라서 주택도 이웃을 향해 열린 집, 여자들이 살기에 편한 집, 환경
친화적인 집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택뿐 아니라 다른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그가 지금까지 설계한 건물은 우성타운하우스, 보광동.양재동 주택, 분당
신도시 시범단지 연립주택 및 단독주택 등 10여건의 주택이 있다.

또 고현우체국, 영락경로원, 압구정동 서원빌딩, 반포 풍성빌딩, 하향전신
전화국, 세진전원공장, 하남창업보육센터 등 10여건의 중소형 건물도 설계
했다.

이 모든 건물에는 그만의 섬세한 손놀림과 강렬한 건축관이 배어 있다.

그는 연배에 맞게 대외적인 활동도 열심이다.

한국여성건축가협회 부회장을 4년동안 맡아오고 있다.

그는 요즘 협회가 추진하고 있는 행사준비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건축축문화의 해인 올해 협회는 "내가 가꾼 우리마을" "어린이 마을 그리기"
"주부 글짓기" 등 건축문화 대중화를 위한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박씨는 73년 홍익대 건축학과를 나와 10여년간 설계사무소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84년 현재의 장원건축을 설립하고 15년째 설계활동을 해오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홍익대학교 건축공학과 강사로 출강도 하고 있다.

< 박영신 기자 yspa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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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포인트 >

1) 자기 계발에 충실하라

건축설계는 제조업이나 유통업과 달리 삶의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경쟁환경에서 드러나지 않는 불이익을 극복해야 했다.

그는 주어진 환경을 외면하기보다는 충실히 수용하면서 자신만의 독자적
생존환경을 확보해 경쟁력을 길렀다.

여성건축가가 남성위주의 건축계에서 약점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장점이
되도록 했다.

특히 남성들이 생각지 못하는 섬세한 공간구성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꾸준한 자기계발이 현재의 그녀를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2) 이론이 뒷받침된 설계를 하라

겉과 속이 일치하는 정직한 설계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박씨의 설계
지론이다.

안과 밖이 다른 치장은 낭비요, 건축의 기능을 떨어뜨리는 불합리한 요소
라는 것이다.

한번 지어진 건물의 공간은 사람들의 심리나 정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은 엄청나게 크다.

그는 예술.심리학.기호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건축 이외의 분야에 대한 관심을 통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밝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낼 것인지를 고민한다.

3) 건축주를 이해하는데 최선을 다하라

의사의 치료행위는 환자의 자각증상을 이해하는데서 시작된다.

건축가도 건축주를 충실히 이해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설계를 할 수 없다.

건물은 근본적으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

보여 주기 위한 공간이어서는 안된다.

기능적.심리적으로 편하고 효율적이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꼭 반영돼야 하는 것이 있다.

주변환경과의 친화성이다.

이웃을 가로막고 자신만의 성을 쌓은 건축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그렇다고 건축주를 가르치려 들지는 않는다.

편안한 대화를 통해 건축주를 만나는 것도 그의 매력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