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구제금융시대 문단에 "아름다운 사건"이 하나 생겼다.

익명의 독지가가 가정형편이 어려운 전업작가들의 자녀학비를 대주기로 한
것이다.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사업가가 한국소설가협회(회장 정을병)
에 1천만원의 장학금을 보내왔다.

그는 앞으로도 학기마다 1천만원씩 매년 2천만원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겠다고
전했다.

소설가협회는 논의끝에 올 2학기부터 대학생 5명에게 이 장학금을 지급하기
로 했다.

명칭도 기증자의 딸 이름을 붙여 "봄이 장학금"으로 정했다.

문단에서는 이번 일을 문예진흥원의 "특별지원금"과 비교하고 있다.

전업작가들에게 미발표 원고뭉치를 들고 오게 해서 "심사" 뒤 돈을 나눠
주는 것에 비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이냐는 것이다.

특별지원금 심사과정을 놓고 온갖 뒷얘기와 잡음이 오갔던 상황이고 보면
더욱 뼈아프게 들린다.

IMF체제에서 문인들의 창작의욕을 북돋우는 것은 일회성 시혜자금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러나는 따뜻한 마음이라는 걸 일깨워주는 이야기다.

이 미담은 지난 봄에 싹텄다.

소설가 이기윤.이광복씨가 "문학을 정말 사랑하는" 그와 자리를 함께 했다.

딱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업작가들의 어려운 사정들이 서로의 입에서
나왔다.

누구는 전세집을 비워서 사글세로 옮겼다더라, 아무개는 딸아이 학비를
못내 파트타임으로 취업시킨 뒤 혼자 눈물을 흘렷다더라...

궁핍한 문인들의 아픈 사연들이 하나 둘 술잔에 젖어들었다.

그렇게 쓸쓸한 얘기를 나누고 헤어진 다음날.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자녀 교육만은 소홀히 할 수 없지 않겠느냐며
학비를 보조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바로 그날 1천만원이 송금됐다.

"어떤 형식이든 다 좋습니다. 어려운 문인들에게 도움만 된다면요. 다만 제
이름은 절대 밝히지 말아주세요"

작가들은 그의 뜻을 존중하면서도 가장 실질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
을 모색했다.

수혜 대상은 일단 등단 10년 이상의 전업작가 중에서 고르기로 의견을
모았다.

대학.전문대학에 재학중인 자녀들에게 학기등록 1주일 전까지 지급하고
형편에 따라 연속 두번까지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