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금융시장 안정대책에도 불구하고 주가추락이 멈추지 않자 증권가도
하루종일 어수선하기만 했다.

정부의 강력한 제동으로 공사채형 수익증권의 환매소동은 진정이 되고
있으나 주가하락으로 환매소동이 주식형으로 번지리도 모른다는 우려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금융시장의 동요를 진정시키기 위해 정부의 추가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왔다.

다만 금융기관 사이에선 "나 혼자 살려고 하다간 모두가 공멸한다"는
자성론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26일 오전 8시30분 투자신탁협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긴급 투자신탁사장단
회의는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는 찜통더위 속에서 마이크도 없이 쥐죽은 듯한
침묵속에서 시작.

전날밤 11시~1시30분에 회의통보만 받고 참석한 사장들은 대부분 불만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발언을 최대한 자제하는 분위기.

사회를 맡은 김종환 대한투신 사장이 "금융시장안정화대책"이란 제목이
붙은 "결의안 초안"을 읽는 도중에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나 신규자금 2조6천억원을 대우그룹에 지원하는 문제가 거론되자
각사의 입장을 강조하는 발언이 잇따라 대우그룹 문제를 보는 투신사의
시각을 노출.

변형 한국투신 사장은 "주채권은행이 1백50%의 공동담보를 설정한다"는
대목에서 공동담보를 어떻게 설정하는가를 제기, 굳게 닫혔던 사장들의
말문을 여는 역할을 했다.

백용즙 삼성투신운용 사장은 "투신운용사는 고유계정이 없기 때문에 고객이
맡긴 신탁재산에서 지원자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실무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고 지적.

유성규 동원투신운용사장도 "돈이 없는데 어떻게 지원하냐"며 "자금지원
보다는 고객의 투자심리를 안정시키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

얘기가 부정적인 쪽으로 흐르자 이창식 현대투자신탁증권 사장은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다. 혼자 살려고 하면 모두 죽는다"며 분위기 반전을 시도.

사회자인 김종환 사장도 "금감원쪽에서도 참석했다. 적극 협조해 달라"고
쐐기박기를 시도.

이날 유일하게 외국인으로 참석한 템플턴투신운용의 제임스 루니 사장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노력에는 찬성하나 새로운 자금지원에 대한 리스크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는 추후에라도 꼭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

김동우 제일투신운용 대표는 "대우에 대한 자금지원이 고객을 위한 것인지와
임원의 책임은 어떻게 되느냐"며 하소연하기도.

<>.대우그룹 채권이 많이 편입된 것으로 알려진 A투자신탁운용의 지난
금요일(23일)과 토요일(24일) 수익증권 환매액은 3천억원가량인 것으로 집계.

이 투신운용사 관계자는 "금요일 하루에만 2천5백억원이 빠져 나갔으며
하루평균 환매요구액이 1천5백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많은 액수"
라고 언급.

하지만 어느 정도의 환매요구는 이미 예상했으며 2조5천억원정도까지는
버틸 여력이 있다고 부연.

그는 또 "환매를 원하는 고객이 예상수준을 넘어설 경우, 뾰족한 대책이
없는게 사실이지만 환매행렬이 그 정도까지 오래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

<>.채권단은 26일 대우의 유동성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4조원의 신규지원자금
을 마련하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시중자금이 넉넉해 자금조달에는 어려움이 없었던 반면 은행 내부의 의사
결정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을 겪어야 했다.

코메르츠은행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은 외환은행은 26일중 이사회를 여는
것이 불가능, 자금지원방안을 마련하는데 애를 먹었다.

외환은행은 우선 콜자금으로 먼저 대우에 지원하고 빠르면 27일중 경영
위원회와 이사회를 열어 자금지원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채권단의 결정에 따라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의할 가능성은 높다"며 "이사회 결정이 떨어진 후에야 기업어음 매입방식
으로 자금을 지원할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은행은 대우그룹에 대한 자금지원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
26일 긴급 이사회를 소집했다.

이사회에서 일부 사외이사들이 대우에 대한 신규자금지원에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은행들도 대부분 사외이사들의 의견수렴과정을 거치거나 이사회의
사후승인을 받기로 하는 등 내부의사결정에 애를 먹고 있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은행의 지배구조를 독립적으로 바꾸어 놓고
이제와서 특정업체에 대한 자금지원을 요구하고 있다"고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 현승윤 기자 hyunsy@ 홍찬선 기자 hcs@ 조주현 기자 fores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