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 연세대 교수 / 경제학 >

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증권시장에서부터 시작된 봄바람이 실물경제에도 불어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벌써 경기과열을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과 2년전 "펀더멘털"이 좋다던 경제가 급속하게 몰락했던 경험을
되새긴다면 누구도 선뜻 내년을 자신있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최근의 경기회복이 풍부한 유동성과 증시활황에 힘입은 민간소비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아직도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다.

우리 경제는 과연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는가.

경기를 연상승(soft take-off)시키고 그 위기를 뛰어넘기 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우선 최근의 경기회복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두말할 여지없이 저금리로 인한 금융비용의 절감과 구조조정을 통한 감량
경영이 뒷받침된 결과이다.

세계경기의 동반상승도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반면 경기회복이 개혁정책의 성과라고 평가하는데는 상당히 인색한 것 같다.

오히려 개혁정책이 아직도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경제정책은 앞으로가 더욱 중요할 것 같다.

오히려 위기상황에서는 정부의 모든 간섭이 정당화될 수 있지만 위기에서
벗어날수록 선별적인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경기를 부드럽게 상승시키고 위기를 뛰어넘어 안정성장을 이룩할 수
있는 구조개선에 눈을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남미처럼 몇년 간격으로 상승과 침체를 거듭하며 IMF의 신세를 져야하는
취약한 구조를 답습하지 않는 처방을 찾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앞으로 몇년간 정부의 경상수지관리와 기업정책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될 것 같다.

첫째, 경상수지와 환율의 안정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한국과 같은 "작은 개방경제"를 위협하는 매개변수는 바로 외환시장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97년처럼 경상수지의 대폭적인 적자에도 불구하고 원화가치에 거품이 생겨
환율이 경제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거나 외환보유고가 부족하고 해외
차입이 많은 구조적 취약성을 외부에 노출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구조적 악순환에서 멀리 벗어나기 위해서는 앞으로 몇년동안 해마다 2백억
달러 수준의 경상수지 흑자가 유지되고 외환보유고도 대폭 확대돼야만 할
것이다.

현재상황은 어떠한가.

수출증대보다는 수입감소와 외국인 투자로 흑자가 유지되고 있다.

외환시장에서는 공급과잉에 밀려 원화가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풍부한 유동성으로 실적이 부진한 기업의 주가가 거품처럼 상승하듯이 지금
원화가치에도 거품이 발생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하반기에 투자수요로 인한 수입증가가 본격화된다면 흑자폭이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것은 위기의 악순환을 가져오는 가장 큰 복병으로 등장할 것이다.

둘째, 글로벌 경제에 걸맞은 시장지향적 기업정책이 필요하다.

특히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초일류기업을 육성하는데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을 강화하고 부채를 낮추며 공정성을 강화하는 정책은
바람직하지만 대기업의 규모자체를 억제하려는 정책은 목표자체가 수정돼야
한다.

우리 기업은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초대형 기업들과 경쟁해야만 한다.

국내시장에서도 규모의 경제가 없고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기업이 어떻게
이들과 경쟁하겠는가.

외국기업보다 국내기업을 역차별하거나, 사회정서에 밀려 시장논리를
저버리거나, 막연한 반 대기업 정서에 편승해 일관성없는 정책이 실시될 때,
경쟁력은 소리없이 추락하게 되는 것이다.

기업개혁의 가장 큰 무기는 정부가 아니라 시장경쟁이며 경쟁력도 시장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단지 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규제대상이 돼야 하는 발상은 변화돼야 한다.

오히려 개입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도 많다.

이제는 기업정책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야 한다.

97년을 돌아보자.

우리가 IMF사태를 맞게 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개방경제에서 외환관리에
실패하고 정치논리에 밀린 기아 및 한보 처리와 관련된 대기업정책에 있었다.

그 아픔에서 얻었던 값진 경험은 한번으로 족해야 한다.

힘겹게 찾은 경기회복을 연상승시키면서 경상수지와 환율안정을 유지하고
시장지향적 기업정책을 일관성있게 실시하는 것이 구조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첫 단추를 채우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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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연세대 경제학과
<>미국 코넬대 경제학박사
<>한국경제평론가모임 회원
<>저서:한국의 산업조직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