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

야비한 표정으로 내뱉는 쌍소리와 비아냥거림은 꼬챙이가 되어 상대의
가슴을 후벼판다.

거리낌없이 휘두르는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는 허공을 가르며 피를 뿌린다.

몸을 날려 뻗은 주먹 밑으로는 멍자국 시퍼런 몸뚱이들이 나뒹군다.

이쯤이면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세력다툼중인 뒷골목 깡패들의 패싸움 정도가 아닌가.

하지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다름아닌 강력계 형사들의 뒷모습이다.

이명세 감독의 여섯번째 연출작인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범죄액션물
이다.

주인공은 강력계 형사들이다.

그들의 모습은 상식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깡패보다 더 과격하고 지독하다.

목표는 오직 한가지.

지옥끝까지 쫓아가 범인의 손에 수갑을 채우는 일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폭력"이다.

영화는 어설픈 총질과 주먹다짐으로 폼을 내거나 희극적 요소를 부각시킨
여느 범죄액션물과의 단절을 과감히 선언한다.

"우리가 뭐 투캅스 형사인 줄 알아, 이 X새끼야".

이야기구조는 단순하다.

대낮 도심 한복판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돈을 강탈한 범인을 동물적 근성의
형사들이 추격한다는 내용.

그 흔한 사랑타령이나 생활인으로서의 애환을 담기 위해 샛길로 빠지지 않고
질주한다.

흑백으로 처리한 첫 장면부터 시선을 붙든다.

되는 대로 입은 듯한 옷차림에 불량기 넘치는 표정과 걸음걸이.

영락없는 건달행색인 우형사(박중훈)가 필마단기로 허름한 창고에 뛰어들어
조직폭력배들과 벌이는 한판 싸움이 폭발적이다.

숨고를 틈없이 이어지는 컬러화면은 냉혹한 살인자 장성민(안성기)의
살인장면.

소나기 몰아치는 어느 가을 낮 도심 한복판.

비지스의 "홀리데이" 선율에 맞춰 내리긋는 긴 칼의 움직임이 서늘하다.

이때부터 숨가쁜 추격전이 시작된다.

우형사는 파트너 김형사(장동건)와 "의미없는" 잠복근무에 들어가고, 유흥가
주변의 조무래기들을 잡아 다그치지만 범인의 행적은 오리무중.

마침내 주범이 장성민이란 사실을 알아낸 둘은 장성민의 애인(최지우)집에
잠복한다.

쇠파이프와 주먹질이 난무하지만 폭력영화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명세 감독의 영상미학이 빚어낸 마취효과 때문이다.

이 감독은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영상언어를 고집해온 충무로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그의 장기는 이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CF처럼 깔끔하면서도 힘있는 화면의 이음으로 영화의 골격을 반듯이 세워
놓았다.

소품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장인정신과 하이퍼 리얼리즘을 표방한
다양한 시각효과를 통해 미묘한 감정의 색깔변화까지 포착해 냈다.

이 감독이 2년동안 발로 뛰어 완성했다는 시나리오도 영화에 힘을 부여하는
데 단단히 한몫했다.

빼놓을 수 없는 게 박중훈의 연기다.

늘 따라붙던 "박중훈식 코믹연기"란 꼬리표를 그야말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떼어버렸다.

킬러로 변한 안성기의 모습도 새롭다.

영화의 힘을 함축하는 이명세 감독의 말.

"나는 작가보다 장인이 되고 싶었다. 보들레르의 말에 의하면 장인은 오직
하나만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범죄자를 추적하는 형사들은
장인이다. 나와 닮은 숙명을 가진 그들의 세계를 한국적 액션으로 그리고
싶었다"

< 김재일 기자 kj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