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임준수 스크린 에세이) 애니메이션 '타잔'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애니메이션의 장점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유자재로 영상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과 동물의 끈끈한 관계를 나타내고 싶어도 실물영상에선 그
방법이 쉽지 않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에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동물의 인간화도 가능하다.
동물 사회에서 밀림생활을 하는 타잔을 그리는 방법엔 애니메이션이
안성맞춤이 아닐 수 없다.
타잔이야기는 이제 이골이 날 만큼 많이 들은 동화물이다.
이때까지 영화화된 것만 72편.
타잔이 등장한 횟수로 따지면 드라큘라 다음이라는데 그 친숙도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단연 선두를 차지할 것이다.
생각하기조차 꺼림칙한 흡혈귀와는 아예 비교 대상이 못된다.
그와 달리 만인의 사랑을 받는 타잔을 창안한 에드거 버로(미국작가,
1875~1950)야말로 노벨 평화상감이라 할 것이다.
그는 1912년이래 26편의 타잔이야기를 써 전세계 청소년들의 가슴에
밀림왕자의 우상을 심었다.
73번째 스크린에 등장한 타잔은 종전의 모습이 아니다.
실물인간이 아닌 애니메이션으로 나와 막힘없는 동작을 연출한다.
특히 호랑이와 혈투를 벌이는 장면은 실물영상으로는 불가능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제작사에서 선전하는 "다이내믹 애니메이션"을 실감할 만하다.
숲속의 넝쿨을 밧줄삼아 정글을 누비는 장면은 왕년의 밀림왕자 모습과
판이하다.
여기에 감미로운 노래와 웅장한 전자음악을 곁들여 밀림속의 동물세계가
자못 환상적으로 나타난다.
뻔한 스토리를 각색해 "새로운 타잔"을 탄생시킨 첨단 제작기술은 알아줄
만하다.
타잔영화에서 작품성이나 구성을 따지는 것은 난센스다.
있는 대로 보고 즐기면 그만이다.
혹자는 타잔이 막판에 나약해졌다고 아쉬워하지만 그런 인간적 묘사가 이
영화의 장점이다.
이때까지 나온 타잔엔 고뇌하는 모습이 없었기 때문이다.
젖먹이 때부터 동물세계에서 자란 그가 인간을 만난 뒤부터 자신의 정체성에
회의를 갖는다는 설정은 야성의 주인공에게 인격을 부여한 것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그것을 "만화영화답지 않게 무게잡았다"고 본다면 그 자체가 만화같은
시각이다.
애니메이션에 즐거움과 함께 감동요소가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번 타잔영화엔 적어도 실물영상에서 볼 수 없던 몇가지 감동장면이 있다.
타잔을 키운 고릴라부부가 보이는 애틋한 사랑이 그런 것이다.
어미 고릴라가 자식처럼 키운 타잔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모정이 자못
감동적이다.
기화요초가 가득한 밀림과 애교가 넘치는 동물들의 묘사도 환상적이다.
폭포가 쏟아지는 계곡의 자연 모습은 왕년의 이발소 그림같지만 그것이
주는 시각적 즐거움은 이발의 개운함에 못지 않다.
어른이 타잔영화를 제대로 즐기려면 조금 유치해지는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동심으로 돌아가든지...
< jsrim@ 편집위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30일자 ).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과 동물의 끈끈한 관계를 나타내고 싶어도 실물영상에선 그
방법이 쉽지 않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에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동물의 인간화도 가능하다.
동물 사회에서 밀림생활을 하는 타잔을 그리는 방법엔 애니메이션이
안성맞춤이 아닐 수 없다.
타잔이야기는 이제 이골이 날 만큼 많이 들은 동화물이다.
이때까지 영화화된 것만 72편.
타잔이 등장한 횟수로 따지면 드라큘라 다음이라는데 그 친숙도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단연 선두를 차지할 것이다.
생각하기조차 꺼림칙한 흡혈귀와는 아예 비교 대상이 못된다.
그와 달리 만인의 사랑을 받는 타잔을 창안한 에드거 버로(미국작가,
1875~1950)야말로 노벨 평화상감이라 할 것이다.
그는 1912년이래 26편의 타잔이야기를 써 전세계 청소년들의 가슴에
밀림왕자의 우상을 심었다.
73번째 스크린에 등장한 타잔은 종전의 모습이 아니다.
실물인간이 아닌 애니메이션으로 나와 막힘없는 동작을 연출한다.
특히 호랑이와 혈투를 벌이는 장면은 실물영상으로는 불가능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제작사에서 선전하는 "다이내믹 애니메이션"을 실감할 만하다.
숲속의 넝쿨을 밧줄삼아 정글을 누비는 장면은 왕년의 밀림왕자 모습과
판이하다.
여기에 감미로운 노래와 웅장한 전자음악을 곁들여 밀림속의 동물세계가
자못 환상적으로 나타난다.
뻔한 스토리를 각색해 "새로운 타잔"을 탄생시킨 첨단 제작기술은 알아줄
만하다.
타잔영화에서 작품성이나 구성을 따지는 것은 난센스다.
있는 대로 보고 즐기면 그만이다.
혹자는 타잔이 막판에 나약해졌다고 아쉬워하지만 그런 인간적 묘사가 이
영화의 장점이다.
이때까지 나온 타잔엔 고뇌하는 모습이 없었기 때문이다.
젖먹이 때부터 동물세계에서 자란 그가 인간을 만난 뒤부터 자신의 정체성에
회의를 갖는다는 설정은 야성의 주인공에게 인격을 부여한 것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그것을 "만화영화답지 않게 무게잡았다"고 본다면 그 자체가 만화같은
시각이다.
애니메이션에 즐거움과 함께 감동요소가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번 타잔영화엔 적어도 실물영상에서 볼 수 없던 몇가지 감동장면이 있다.
타잔을 키운 고릴라부부가 보이는 애틋한 사랑이 그런 것이다.
어미 고릴라가 자식처럼 키운 타잔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모정이 자못
감동적이다.
기화요초가 가득한 밀림과 애교가 넘치는 동물들의 묘사도 환상적이다.
폭포가 쏟아지는 계곡의 자연 모습은 왕년의 이발소 그림같지만 그것이
주는 시각적 즐거움은 이발의 개운함에 못지 않다.
어른이 타잔영화를 제대로 즐기려면 조금 유치해지는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동심으로 돌아가든지...
< jsrim@ 편집위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