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만국박람회. 태양처럼 빛나는 2500개의 불빛이 떠올랐다. 사람들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그 빛나던 태양들은 형광등. 인류가 어둠 속에서도 반짝거리는 '형광체'를 발견한 게 1674년이었으니, 형광등이 대량생산 된 건 무려 260여 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제너럴일렉트릭(GE)이 주도한 형광등의 대중화는 세계인의 삶을 바꿨다. 캄캄한 밤에도, 어스름한 새벽에도 대낮처럼 일할 수 있게 됐다. 어쩌면 형광등의 발명은 산업혁명의 결정적 순간 중 하나다. 무한히 빛날 것만 같았던 형광등도, 시간이 지나며 별것 아닌 존재가 됐다. 공장과 사무실은 물론 집집마다 새하얀 불빛이 원하는 때 언제든 흘러나올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찮은 존재가 돼버린 형광등에 다시 한번 영광의 순간을 선사한 이가 있다. 강렬한 색이 주도하던 1960년대 미술계를 빛으로 전복시킨 미니멀 아트의 선구자, 댄 플래빈(1933-1996)이다. 그의 대규모 회고전을 스위스 바젤의 쿤스트뮤지엄 바젤 노바우(Neubau)에서 최근 만났다. 아트바젤이 열리는 6월 '꼭 봐야할 전시 0번'으로 꼽힌 '댄 플래빈: 빛에 대한 헌신( Dedications in Lights)'에서다. 총 277점의 작품이 미술관 곳곳에 설치됐다. 미국 작가 플래빈은 1960년대 후반 대량생산된 형광등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형광빛의 네온사인이 도시 곳곳을 야비하고 저속한 인공의 공간으로 만들고 있던 때, 그는 형광등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색만을 추출해 3차원으로 옮겨왔다. 텅 비어있는 공간을 비추는 화사한 색들. 백색의 벽을 황금빛 형광등 하나가 사선으로 가르고, 수직의 붉은 빛을 공간의 모서리를 빛낸다.&n
“영화인들의 꿈과 열정을 응원하고자 시작한 영화제가 어느덧 10회를 맞이했네요. 이 영화제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는 감독님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기억에 남아요.”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사진)은 26일 열린 ‘제10회 신한 29초영화제’에서 “영화인들이 더 큰 무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항상 응원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금융을 쉽게 풀어내기 위해 시작한 신한 29초영화제는 지난 10년간 8786편의 작품이 출품돼 금융 분야 대표 영화제로 자리매김했다. 진 회장은 “29초라는 짧은 시간에 이야기를 담아낸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라며 “한국경제신문이 주관하는 영화제가 영상 트렌드 변화에 크게 기여해왔다”고 말했다.올해 주제는 ‘영화 같은 여행 이야기’였다. 그간 돈을 비롯해 사업 분야와 접점이 있는 금융 이야기를 주로 다뤘지만, 올해는 영화인의 입장에서 더욱 폭넓은 주제를 선정했다. 진 회장은 “영화와 여행은 공간과 문화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며 “일상에 힐링이 되는 여행처럼 잠시나마 힘을 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주제를 골랐다”고 말했다. 이어 “여행이란 낯선 경험 속에서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자기만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도 생겨난다”며 “실제로 많은 감독이 자신만의 세계관을 담아 좋은 작품을 만들어줬다”고 했다.진 회장의 말처럼 이번 영화제에 역대 최다인 1396편이 출품되는 등 여행 이야기는 수많은 예비 영화인에게 많은 공감을 받았다. 이 중 대상을 받은 박선영 감독의 ‘0과 1의 탈출기’에 대해 진 회장은 “여행의 참된 가치를 찾아 바깥
‘제10회 신한 29초영화제’에서는 ‘영화 같은 여행이야기’라는 주제에 맞게 여행의 폭넓은 의미를 조망하거나, 여행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통해 많은 이에게 공감 가는 메시지를 다룬 작품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소재가 여행이었던 만큼 영상미가 두드러진 작품도 눈에 띄었다.일반부 우수상을 받은 조민기·이제우 감독의 ‘뻔한 여행’은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랑을 기대하는 청춘의 감정을 유쾌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주인공은 캐리어를 끌고 친구와 여행지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린다. 그에게 다른 여행객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말을 건넨다.그 순간 설레발 치는 주인공. 숱한 멜로 영화에서 여행에서 사랑이 꽃피었듯, 자신에게도 그런 기회가 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해 노래와 춤이 펼쳐지고, 청량한 푸른 바다와 높은 채도의 색감은 활기찬 분위기를 부각한다. 짧은 영상에 강한 임팩트를 선보인 이 작품은 여행에서 ‘설렐 뻔’한 추억을 코믹하게 풀어냈다.청소년부 우수상을 받은 박인선 감독의 ‘여행은 _이다’는 여행의 의미를 되새기는 내용이다. 학교 수업 시간에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사람이 야외수업을 하자고 제안한다. 아이들은 한순간에 함성을 지르며 밖으로 나가 물총놀이를 즐긴다. 매일 비슷비슷한 수업 시간이 소중한 추억거리가 되면서 영화는 다시금 ‘익숙한 일상을 새롭게 만드는 이벤트’라는 여행의 본질을 되새긴다.최다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