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빛은행이 해외DR(주식예탁증서)발행에 대한 외국의 반응을 일부러
외면한게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지난달 30일오후 한빛은행의 DR발행이 보류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 시장
전문가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해외투자가들의 반응은 이미 열흘쯤 전부터 부정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정부와 한빛은행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거나 이를 외면했다는 얘기다.

한빛은행의 해외DR발행은 사실 한 은행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우 사태가 터진후 해외에서 첫 주식발행이었다.

대우에 많은 돈을 빌려준 한빛은행이 성공적으로 외자를 유치한다면 외국인
들은 한국을 떠나지 않을 것으로 볼수 있다.

만약 실패한다면 국가신용도에 불길한 징조가 될 수도 있다.

정부는 국내외 투자가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여러가지 비상대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한빛은행의 DR발행도 당연히 이같은 시각에서 바라보고 대비책을 마련해야
했다.

상황이 어렵다면 미리 연기하는 조치라도 취했어야 했다.

한빛은행은 의욕만 앞섰다.

한빛은행은 "규정만 바꿔준다면 8천5백~9천원 수준에서 DR을 발행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정부는 "상장법인 재무관리규정"을 고치기만 했을 뿐이다.

정부는 한빛은행의 말만 믿고 가격을 약간 낮출 수 있도록 규정을 고쳐주는
것만으로도 발행할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같다.

DR발행이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규정을 고쳐줬다면
책임을 방기한 것이다.

한빛은행의 DR발행 연기는 지난97년 산업은행의 해외채권 발행연기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산업은행은 "금리만 높이면 돈을 충분히 빌릴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얼마후 한국은 외국으로부터 돈을 전혀 빌릴수 없는 지경까지
내몰렸다.

한빛은행도 "가격만 좀더 낮추면 충분히 발행할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가격속에 담겨있는 것을 예리하게 꿰뚫어보지 못한 것 같다.

"낮은 가격"은 "낮아진 신용도"를 뜻했지만 의욕만 앞섰다.

외국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한빛은행만이 아니라 다른 은행들과 기업들마저 비슷한 어려움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정부와 한빛은행은 이번 DR발행 연기에서 외국인들이 또다시 한국의 신용도
를 문제삼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 현승윤 경제부 기자 hyuns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