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장대비는 삶의 터전을 송두리채 빼앗아갔다.

하늘을 향해 "해도해도 너무 한다"고 불평할 기력조차 잃었다.

경기 북부지역의 중소.영세업체들은 지난달 31일부터 2일까지 사흘째
계속된 수마로 이미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지난해 수마에 이어 ''IMF 환마''까지 닥쳐 죽을둥 살둥 고생했던 이들에게
있어 이번의 집중호우는 그간 모질게 이어온 숨통마저 끊으려는 "날벼락"과
다름없었다.

재기의 꿈도 "물거품" 처럼 휩쓸려 가버렸다.

공장을 다시 세우는 게 빠를 정도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침수피해를 당한 일부 공장 관계자들은 생산품과 원재료를 높은 곳으로
옮기면서도 "매년 똑같이 이지역에 수해가 되풀이되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
며 넋을 잃을 정도였다.

2일 오후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은 공장은 경기 북부지역에서만 79개소.

제품과 원자재, 생산시설이 못 쓰게된 만큼 직접적인 피해액만 수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생산과 수출차질액까지 합칠 경우 재산피해는 이보다 훨씬 커질 수 밖에
없다.

수해피해가 가장 심각한 경기도 북부지역에 있는 공장이 3천3백여개에
달하는만큼 태풍 올가 영향으로 호우가 계속될 경우 피해규모는 기하급수적
으로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고립무원의 섬"으로 변한 연천지역의 경우 45개 업체가 물에 잠겼다.

경기도 지역중에서 피해가 가장 컸다.

동두천에서 22개, 양주 및 포천에서 각각 6개 공장이 흠뻑 젖었다.

연천군 관계자는 "현재까지 파악된 공장침수로 인한 피해액만 85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지역별로는 <>연천읍 3개(연천탁주.연경금속.태기산업) <>전곡읍 30개
(한성섬유.통일산업.영진 등) <>군남면 4개(경문통상.풍성연화.동방기업.
용진비료 등) <>백학면 2개(연합판금.대영식품) 업체가 폭우 피해를 입었다.

동두천에 있는 대부분의 섬유와 피혁업체도 화를 당했다.

닭가공업체 (주)마니커를 비롯, 우진(섬유) 일신산업(섬유) 동양기업(피혁)
서광(피혁) 등 20여개 업체가 침수 피해를 당했다.

관계자는 "관내에 공장이 2백여개나 있는데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어
추가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양주군에서는 영주섬유 유경섬유 을진섬유 명한금속 중앙리빙보드
(건축자재) 코아슨(전기) 등 6개 공장이 물에 잠겼다.

이 가운데 영주섬유와 유경섬유는 공장 창고안에 보관해오던 원자재가
물에 잠겨 각각 2억여원씩의 피해를 냈다.

포천군에서도 밥상 생산업체인 백년공예와 과자제조업체인 청우식품 등
6개 업체가 침수됐다.

파주시 월릉면 덕은리에서 업소용 냉장(동)고 제조업체인 세광산업을
경영중인 안창호(58)사장은 "공장 뒤쪽에 위치한 계곡물이 불어 지난 96년과
98년에 이어 세번째로 공장침수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토사와 물이 발목까지 차오른 공장에서 복구작업에 여념이 없었던 안
사장은 이날 오후 비가 다시 쏟아지자 납품할 제품을 한개라도 2층으로
옮기기위해 비지땀을 흘렸다.

그는 "여름철 성수기를 맞아 납품할 제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상태
에서 공장이 물에 잠겨 큰 손해를 보게됐다"면서 "해마다 반복되는 똑같은
재앙에 이젠 신물이 난다"고 불평했다.

< 파주=이건호 기자 leek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