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로치 < 모건 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 >

세상이 갑자기 뒤바뀌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때인 것 같다.

전세계 산업 활동의 양상이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두 가지의 중요한 데이터가 이같은 거대한 변화를 암시해 준다.

독일 경제 활동이 놀라울 정도로 솟구치며 활기를 띠고 있다는 사실과
미국의 적자가 사상 최고치에 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찬란하던 미국의 달러화가 빛을 잃고 있는 가운데 항상 변덕스런 외환시장은
갑자기 유로화 편으로 돌아서고 있다.

이것은 과연 과대평가된 미국 증시를 굴복시킬 수도 있는 청천벽력이
내린다는 신호일까?

독일로부터 날아온 소식은 99년 상반기와 2000년에 유로화가 상승할 것이라
는 쪽에 의견을 모아왔던 우리 유로 담당팀에 있어선 안도의 소식이었다.

유로 국가 총 GDP의 33%를 차지하는 독일은 그 동안 유럽의 환자로 불려져
온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 작년 초부터 5월 사이에는 독일 경기에 대한 전망은 더욱 어두워졌었다

그러나 독일의 경제연구소인 Ifo가 실시한 6월 조사 결과, 전체적인 경제
지표들이 다시 상승세를 보이며 이런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제조업과 유통업 부문이 급속도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6월의 성장세가 2.4분기 지표를 완전히 호전시켜 놓지는 못했지만 하반기로
들어서는 시점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거라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물론 6월 조사 결과에 너무 들뜨기만 해선 안된다.

경기지수가 92.9까지 오르긴 했어도 아직 지난 94년 중반과 97년 후반의
100 수준에는 못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및 유로 국가들이 회복세에 들어서고 있다는 긍적적인 소식에 반해
골이 깊은 미국의 무역 적자는 요즘 들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5월 미국은 2백14억 달러라는 무역적자 기록을 세웠다.

이러한 "외부 유출(external leakage)"은 올 2.4분기의 실질 경제성장률을
1% 포인트 이상 떨어뜨리는 요인이 됐다.

현재 미국 무역 적자는 GDP의 2.5%에 근접하고 있다.

이는 지난 86~87년 사이에 달러가 급락 했을 때의 기록인 3.0%선과도 그리
차이나지 않는 수치다.

물론 수입의 급증(+2.2%)을 반영하는 5월 무역 적자는 미국 내 수요가
여전히 기세등등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지만 문제는 수출(-0.8%)도 급격히 악화됐다는 사실이다.

이런 하락세는 지난 7개월동안 벌써 6번째다.

전세계적으로 경기가 회복되고 있는 분위기에서 지속적인 수출 악화는
곤란한 일이다.

특히 외국으로부터의 주문이 밀려들어오고 있다는 최근의 구매 조사 결과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숫자는 사실을 말해준다.

미국의 무역 수지 불균형 문제는 세계 경제 회복의 어두운 면으로 급속히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국제 수지 불균형에 입각한 예측이 있었기 때문에 달러화의 하락세 반전은
충분히 예견돼 왔다.

하지만 올 상반기 유로화의 하락세는 이보다 더욱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이런 전망이 이제 바뀌고 있다.

이 두 통화 지역에 대한 성장률 예상이 통화 가치 결정과정의 중요한 요소로
부상, 외환시장의 변화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유로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이 증가세를 보이리라는 것은 지금까지는 단지
예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6월의 Ifo 데이터는 유로화 가치 상승에 대한 예상이 들어맞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 데이터는 지금까지의 유로화 약세는 구조적인 요인보다는 경기
사이클에 의한 것이었다는 논리를 한층 더 강화시켜 준다.

성장률 예상의 진자(pendulum)가 다시 유로화 쪽으로 향하기 시작하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미국의 무역 상황이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됐다.

곧 달러화 약세 국면이 나타날 수있다는 논리의 강한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의 이같은 상황 변화는 경제가 화려한 빛을 발한 후 급격한 하락세로
접어들었던 12년 전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87년 무역 적자의 골이 깊어지고 달러 가치가 계속 떨어지자 미국은
긴축정책을 쓰는 것이 유일한 대응책이 됐었다.

그러한 대응책은 앞으로 몇 달 안에 미국이 취해야 할 중요한 정책으로
다시 부상할 수 있다.

미국 중앙 은행이 수년간 호경기로 인한 혜택을 누려온 것은 뛰어난 정책
운영과 운이 결합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운"이라는 측면에 있어선 그 수명이 다하고 있는 것 같다.

상품 사이클이 변하고 있는데다 노동시장도 포화상태다.

또한 임금 인상에 대한 압력,달러에 대한 평가절하 등의 요소도 시장 흐름을
바꾸는 변수가 될 수 있다.

기록상으로 보면 현재 미국 증시는 지난 87년에 있었던 악몽의 여름처럼
과대평가돼 있다.

역사는 이상한 방식으로 되풀이 된다.

그것도 가장 방심하고 있을 때 말이다.

< 정리=고성연 기자 amazing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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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스티븐 로치 모건 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모건 스탠리
인터넷 홈페이지에 실은 글을 정리한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