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의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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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뉴욕에서 젊은 여자가 타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곳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기 때문에 특이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사건은
전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38명이나 되는 이웃사람들이 새벽 3시에 비명소리를 듣고 창밖을 내다보았고
범인이 여자를 죽이는데 소요된 30분동안 줄곧 구경만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이 방관자들을 일일이 면접한 결과 "그 사건에 휘말려
들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38명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이처럼 인간은 남을 도와주는 행위에 대한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거나 도와
주고 나서 오는 자기 손해가 너무 클것이 예상되면 쉽게 방관자가 되고
만다.
인간으로서의 책임보다는 자기의 이익과 손해에 대한 계산이 앞선다.
이 사건의 방관자들이 받은 도덕적 심판은 "방관자도 범인의 동조자일
수 있다"는 무서운 것이었다.
이런 류의 사건은 이미 미국사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몇해전 한국에서도 대낮에 다방여종업원이 폭행당하는 현장을 행인들이
보고도 구경만 한 사건이 있었다.
한 사람의 의인만 현장에 있었더라도 방지할 수 있었던 일이다.
정통적으로 내려오는 우리의 이상적 인간상은 흔히 군자나 선비로
일컬어지는 "어진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의인들의 실천적 행동규범은 "살기위해 인을 해치지 않고
살신해 인을 이루는 것"으로 집약된다.
의, 즉 정의는 공동체 유지의 긴요한 도덕적 질서였다.
시대적 추세인지는 몰라도 방관자들만 우글거리는 우리 사회는 요즘 불의의
배척에 용감한 의인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탐욕스럽고 교활한 자만이 권세를
얻고 축재하고 치부하는 무대같아 보인다.
불의의 동조자들만 득시글거리는 듯한 혼란스런 정치계를 보면 더 그렇다.
하지만 요즘 물바다를 이룬 수해지역에서 속속 전해지는 미담들은 우리
사회가 아직 건전한 구석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살신성인의 자세로 자신의 안위를 잊고 수많은 인명을 구해낸 의인들의
이야기다.
이런 의인들이 존경받고 그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4일자 ).
그곳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기 때문에 특이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사건은
전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38명이나 되는 이웃사람들이 새벽 3시에 비명소리를 듣고 창밖을 내다보았고
범인이 여자를 죽이는데 소요된 30분동안 줄곧 구경만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이 방관자들을 일일이 면접한 결과 "그 사건에 휘말려
들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38명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이처럼 인간은 남을 도와주는 행위에 대한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거나 도와
주고 나서 오는 자기 손해가 너무 클것이 예상되면 쉽게 방관자가 되고
만다.
인간으로서의 책임보다는 자기의 이익과 손해에 대한 계산이 앞선다.
이 사건의 방관자들이 받은 도덕적 심판은 "방관자도 범인의 동조자일
수 있다"는 무서운 것이었다.
이런 류의 사건은 이미 미국사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몇해전 한국에서도 대낮에 다방여종업원이 폭행당하는 현장을 행인들이
보고도 구경만 한 사건이 있었다.
한 사람의 의인만 현장에 있었더라도 방지할 수 있었던 일이다.
정통적으로 내려오는 우리의 이상적 인간상은 흔히 군자나 선비로
일컬어지는 "어진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의인들의 실천적 행동규범은 "살기위해 인을 해치지 않고
살신해 인을 이루는 것"으로 집약된다.
의, 즉 정의는 공동체 유지의 긴요한 도덕적 질서였다.
시대적 추세인지는 몰라도 방관자들만 우글거리는 우리 사회는 요즘 불의의
배척에 용감한 의인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탐욕스럽고 교활한 자만이 권세를
얻고 축재하고 치부하는 무대같아 보인다.
불의의 동조자들만 득시글거리는 듯한 혼란스런 정치계를 보면 더 그렇다.
하지만 요즘 물바다를 이룬 수해지역에서 속속 전해지는 미담들은 우리
사회가 아직 건전한 구석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살신성인의 자세로 자신의 안위를 잊고 수많은 인명을 구해낸 의인들의
이야기다.
이런 의인들이 존경받고 그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