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 플라자] 연매출 60억원 올려 .. 온천초등 김봉경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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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선생님, 밤에는 발명가"
아이디어상품 하나로 연간 5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교사발명가가 있다.
부산 온천초등학교의 발명반을 지도하고 있는 김봉경(45) 교사.
그는 96년 9월 "교육용 실물화상기"(제품명 위드캠)를 상품화, 지난해까지
96억원 어치를 팔았다.
올해에도 60억원의 매출은 무난하다고 얘기한다.
김 교사가 발명과 인연을 맺은 것은 30여년전.
당시 자동차 운수업을 하던 부친의 정비공장에서 부품과 공구를 만지며
호기심을 키웠다.
그러다 중3때 부모와 담임선생님의 만류로 학교공부에만 전념했다.
부친의 사업실패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가정형편이 갑자기 기울자 김 교사는 한양공대 진학을 포기하고 부산교대에
입학했다.
그는 매일밤 2~3시까지 전축 등 전자제품과 전자회로키트를 수리하면서
학비를 벌었다.
고교 시절 손을 놓았던 발명에도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어렵사리 대학을 마치고 78년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받았지만 부친의 빚
때문에 2년치의 봉급마저 차압당했다.
김 교사는 발명반을 지도하면서 새 삶을 개척했다.
낮에는 발명반 학생들과 씨름하고 밤에는 아이디어를 구상하면서 잊혀져가는
발명가의 꿈을 되살렸다.
88년엔 부경대 전자공학과 야간과정에 편입학, 발명의 이론적 기초도
쌓았다.
김 교사는 22년간 발명꿈나무를 키우면서 각종 전시회에 1천여점의 학생
아이디어제품을 내놓았다.
특히 96년 학생발명전시회에선 "문 고정장치(노루발) 개량품"을 출품,
학생 지도교사 학교(동래초등학교)가 동시 수상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당시 대통령상을 받은 이관우 군은 "우리들 대장간"이란 회사를 세우고
상품화(제품명 문지기)에 성공했다.
현재 일본 특허도 출원, 수출을 추진중이다.
김 교사는 스스로의 발명활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품 개발과 상품화에 필수적인 게 바로 자금이었다.
이 때문에 93년부터 올해초까지 아동복 가게를 차려 돈을 모았다.
그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오랜 세월 힘든 생활을 했지만 사업하려면
자기 자본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옷장사는 사업경험과 경영마인드를 키우는 데도 많은 보탬이 됐다.
또 사업하는 학부모를 분석, 영업과 관리 노하우도 배웠다.
그는 96년 8월 "위드전자"를 설립, 본격적인 발명품 사업화에 나섰다.
주요 아이템인 실물화상기는 특허 6건을 출원했으며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에도 특허출원을 마쳤다.
이 제품은 학습자료를 특수 캠코더를 활용, 케이블로 연결된 TV모니터에
띄워주는 장치.
기존 제품이 CCD카메라를 사용하는 데 반해 캠코더를 사용, 미리 학습자료를
준비할 수 있는 녹화기능을 갖췄다.
또 화이트보드를 이용한 화상칠판과 최고 4백배까지 확대하는 현미경 기능도
내장했다.
신모델에는 슬라이드 기능을 더해 네거티브 필름을 양화로도 볼 수 있다.
값은 88만원으로 기존 제품(1백30만원선)과 경쟁이 안 될 정도로 싸다.
지난 7월 열린 제1회 전국교원발명품경진대회에선 "실물화상기 전용 디지털
캠코더"를 출품, 최고상인 금상을 받았다.
김 교사는 사업 이익의 상당부분을 발명반 지도와 교사발명연구회에
지원하고 있다.
사업규모가 커짐에 따라 2~3년후 교단을 떠날 계획이다.
하지만 초.중.고교 발명반과 대학 발명동아리 지원활동은 계속한다.
또 3년안에 발명영재를 지속적으로 지도하는 발명교육센터를 설립하는 꿈도
가지고 있다.
1단계로 올해 초.중학생 5명을 선발, 체계적인 발명교육과 개발활동을
지원한다.
아울러 지역주민과 기업체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민간주도형 발명교실 사업도
펴나간다.
그는 "일본에선 정부가 아닌 지역사회 중심으로 발명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며 "발명교육은 창의적인 생활자세를 익히는 기본적인 소양교육이라는 점을
학부모와 교사 모두가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사는 올해 연세대 특허법무대학원 석사과정에 들어갔다.
학기중에 매주 2차례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강행군이다.
하지만 그가 도움을 주고 싶은 어린이와 예비창업자를 생각하면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051)552-4711
< 정한영 기자 ch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4일자 ).
아이디어상품 하나로 연간 5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교사발명가가 있다.
부산 온천초등학교의 발명반을 지도하고 있는 김봉경(45) 교사.
그는 96년 9월 "교육용 실물화상기"(제품명 위드캠)를 상품화, 지난해까지
96억원 어치를 팔았다.
올해에도 60억원의 매출은 무난하다고 얘기한다.
김 교사가 발명과 인연을 맺은 것은 30여년전.
당시 자동차 운수업을 하던 부친의 정비공장에서 부품과 공구를 만지며
호기심을 키웠다.
그러다 중3때 부모와 담임선생님의 만류로 학교공부에만 전념했다.
부친의 사업실패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가정형편이 갑자기 기울자 김 교사는 한양공대 진학을 포기하고 부산교대에
입학했다.
그는 매일밤 2~3시까지 전축 등 전자제품과 전자회로키트를 수리하면서
학비를 벌었다.
고교 시절 손을 놓았던 발명에도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어렵사리 대학을 마치고 78년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받았지만 부친의 빚
때문에 2년치의 봉급마저 차압당했다.
김 교사는 발명반을 지도하면서 새 삶을 개척했다.
낮에는 발명반 학생들과 씨름하고 밤에는 아이디어를 구상하면서 잊혀져가는
발명가의 꿈을 되살렸다.
88년엔 부경대 전자공학과 야간과정에 편입학, 발명의 이론적 기초도
쌓았다.
김 교사는 22년간 발명꿈나무를 키우면서 각종 전시회에 1천여점의 학생
아이디어제품을 내놓았다.
특히 96년 학생발명전시회에선 "문 고정장치(노루발) 개량품"을 출품,
학생 지도교사 학교(동래초등학교)가 동시 수상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당시 대통령상을 받은 이관우 군은 "우리들 대장간"이란 회사를 세우고
상품화(제품명 문지기)에 성공했다.
현재 일본 특허도 출원, 수출을 추진중이다.
김 교사는 스스로의 발명활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품 개발과 상품화에 필수적인 게 바로 자금이었다.
이 때문에 93년부터 올해초까지 아동복 가게를 차려 돈을 모았다.
그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오랜 세월 힘든 생활을 했지만 사업하려면
자기 자본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옷장사는 사업경험과 경영마인드를 키우는 데도 많은 보탬이 됐다.
또 사업하는 학부모를 분석, 영업과 관리 노하우도 배웠다.
그는 96년 8월 "위드전자"를 설립, 본격적인 발명품 사업화에 나섰다.
주요 아이템인 실물화상기는 특허 6건을 출원했으며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에도 특허출원을 마쳤다.
이 제품은 학습자료를 특수 캠코더를 활용, 케이블로 연결된 TV모니터에
띄워주는 장치.
기존 제품이 CCD카메라를 사용하는 데 반해 캠코더를 사용, 미리 학습자료를
준비할 수 있는 녹화기능을 갖췄다.
또 화이트보드를 이용한 화상칠판과 최고 4백배까지 확대하는 현미경 기능도
내장했다.
신모델에는 슬라이드 기능을 더해 네거티브 필름을 양화로도 볼 수 있다.
값은 88만원으로 기존 제품(1백30만원선)과 경쟁이 안 될 정도로 싸다.
지난 7월 열린 제1회 전국교원발명품경진대회에선 "실물화상기 전용 디지털
캠코더"를 출품, 최고상인 금상을 받았다.
김 교사는 사업 이익의 상당부분을 발명반 지도와 교사발명연구회에
지원하고 있다.
사업규모가 커짐에 따라 2~3년후 교단을 떠날 계획이다.
하지만 초.중.고교 발명반과 대학 발명동아리 지원활동은 계속한다.
또 3년안에 발명영재를 지속적으로 지도하는 발명교육센터를 설립하는 꿈도
가지고 있다.
1단계로 올해 초.중학생 5명을 선발, 체계적인 발명교육과 개발활동을
지원한다.
아울러 지역주민과 기업체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민간주도형 발명교실 사업도
펴나간다.
그는 "일본에선 정부가 아닌 지역사회 중심으로 발명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며 "발명교육은 창의적인 생활자세를 익히는 기본적인 소양교육이라는 점을
학부모와 교사 모두가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사는 올해 연세대 특허법무대학원 석사과정에 들어갔다.
학기중에 매주 2차례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강행군이다.
하지만 그가 도움을 주고 싶은 어린이와 예비창업자를 생각하면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051)552-4711
< 정한영 기자 ch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