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같이 무더운 여름에 골프채를 들고 골즈장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과연
열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밖을 나서면 숨이 턱턱 막히는 이 더위에 시원한 바다나 산이 아니라 왜
하필이면 골프장을 찾을까?

한증막에서 애써 땀을 흘리듯이 재미있게 골프를 치면서 체중조절을 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도록 말이다.

그러나 아스팔트 주차장에서 골프채를 내릴 때까지만 해도 등에서 술술
흐르던 땀이 막상 1번 홀 티에 서는 순간 시원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확 트인 전경과 나무들, 혹은 단순히 골프공이 시원스럽게 날아갔다는
심리적인 이유만은 아니다.

뙤약볕 아래 있는 잔디가 태양광선을 받으면 잔디 잎은 그 중 10%정도를
광반사 해내고, 빛의 40%정도는 잎의 증산작용에 의해서 기화열로 손실된다.

또한 약 5%는 광합성에 이용되므로, 단지 45%정도만 열에너지로 전환되어
우리가 덥다고 느끼는 열복사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선함을 느끼면서 시원스럽게 쭉 뻗어나가는 공을 바라보는
즐거움...

더구나 이때 시원한 산바람이라도 한줄기 불어준다면 이보다 더 좋은
여름 피서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잔디는 어떻게 여름을 날까?

그린을 조성하고 있는 한지형 벤트그라스(Bentgrass)는 북유럽의
지중해연안에 가장 잘 적응하는 잔디이다.

그곳은 낮 평균 기온이 섭씨10~25도이고 다습하며 밤에도 비교적 서늘한
환경조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 이민(?)온 이러한 벤트그라스는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매일 4mm내외로 깎여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러한 잔디의 말 없는 고민을 미리 헤아려 돌보아주는 이들이 바로
코스관리자들이다.

무더위가 계속되면 관리자들은 분무식으로 잔디 위에 살짝살짝 물을
뿌려주어 더위를 식혀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뿌려주는 물이 토양의 습도를 높여 토양 내 병원균의 활성을
높여주고, 조류(그린표면에 검게 끼여있는 미끈미끈한 이끼같은 생물) 발생을
유발하기도 한다.

따라서 토양이 과습하지 않게 통풍도 시켜준다.

여름철에 골프를 치다보면 그린 표면에 작은 구멍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통풍을 시켜주기 위한 작업을 했던 자극이다.

또 골퍼들 모르게 슬며시 "예고"를 높여주어 잔디의 여름철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줄여주기도 한다.

이때 잔디예고를 높였음에도 골퍼들은 오히려 그린의 볼 스피드가 빨라진것
같이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이는 예고를 높일 때 잔디가 너무 촘촘해짐에 따라 통풍이 안되어 습기가
많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잔디밀도를 많이 낮추어 주기 때문이다.

이렇듯 여름철 그린 관리는, 약해진 잔디와 늘어나는 병원균 밀도
사이에서, 마치 한여름 밤의 납량특집극 같이, 잠시도 더위를 느끼게 할
겨를없이 긴장 속에 지나가버린다.

코스관리자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피서(?)를 제공하면서...

< 안양베네스트GC 연구팀장 Shkturf@samsung.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