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명 :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저자 : 야콥 부르크하르트
역자 : 안인희
출판사 : 푸른숲
가격 : 2만9천원 ]

14~16세기 이탈리아 반도.

현대 유럽 문명을 잉태한 르네상스 시대가 빛을 발하던 땅.

그 곳에는 신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의 자유를 추구한 이탈리아인들의
자의식이 숨쉬고 있었다.

역사가이자 예술사가인 야콥 부르크하르트(1818~1897)의 대표작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안인희 역, 푸른숲, 2만9천원)가 출간됐다.

문학 철학 종교 등 르네상스 시대를 살찌운 인문학의 발전 모습과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의 일상 생활 등 르네상스 문화를 여러 측면에서 분석한
책이다.

1860년에 씌어졌지만 오늘날까지 르네상스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문화사의 고전"이다.

부르크하르트는 이 책에서 유럽인으로서의 근원적인 질문, 즉 현대인의
기원과 "개인"이라는 의식이 어떻게 생성됐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서양의 현대인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실질적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길라잡이로 나선 저자와 함께 거슬러 올라가본 14세기 이탈리아는 정치적
혼란으로 갈등과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밀라노 나폴리 등 전제국가, 피렌체 베네치아 같은 도시 공화국, 로마를
중심으로 한 교황국 등이 각축을 벌이던 땅이었다.

반면 한쪽에선 모직물 수출, 베네치아의 조선 공업, 유럽의 금융 중심지로
발돋움한 피렌체 등 눈부신 경제 발전이 이어진다.

부르크하르트는 이러한 정치적 혼란과 앞선 경제력 덕분에 개인에 대한
의식이 이탈리아에서 일찍 싹텄다고 말한다.

신앙심 선입견 망상 등으로 뒤섞인채 사람들의 눈 앞을 가리고 있던 베일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로써 개인주의가 이탈리아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경제 발전은 르네상스 문화의 개화로 연결됐다.

여기서 특기할 점은 부를 소유한 상인 계층과 전제 군주들이 물질적인
호사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정신적 문제에도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는 것이다.

당시 부유한 상인이나 전제 군주들은 유럽 최고 수준의 교양인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이러한 토대 위에 르네상스 문화는 찬란한 꽃을 피워낸다.

부르크하르트는 르네상스의 발전을 주도해나간 인문주의자들의 이상형을
"전인"이라고 부른다.

전인은 그 시대의 교양과 여러 재능을 함께 갖춘 인물이다.

저자는 운동, 음악, 물리학, 수학, 그림과 조소, 문학 등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활동을 보인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1404~1472)를 대표적 전인으로
소개한다.

이처럼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는 교양을 중시한 사회였다.

귀족 계급이라는 출신 성분보다는 여러 분야에 해박한 지식과 재능을 가진
교양인을 더 높이 샀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르네상스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저자는 인문학 부활을 주창하며 학문에 매진한 인문주의자들의 활동도
생생히 펼쳐 놓는다.

고대 작가들의 작품에서 창의적 글쓰기의 씨앗을 찾아내고 키워간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등 당대 최고의 문인들과 마키아벨리 미란돌라 등
철학자들의 활약상을 소개한다.

인문학을 중심으로 한 학문적 분야뿐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인들의
흥미로운 생활상도 담겨있다.

저자는 당시 미인의 기준, 수도사들의 편견에서 탄생한 마녀의 개념, 간통
미신 축제 범죄 등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적절히 양념으로 섞어 놓았다.

그리 녹녹치 않은 주제인데다 두툼한 책 두께에 움찔할만하지만 실상은
일반인들도 재미를 느낄만한 "부드러운 책"이다.

< 박해영 기자 bono@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