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이 기업문화를 바꾼다 ]

(주)대우 모로코 라바트 지사의 이대희 대리는 지난 6월 이 회사의 인터넷
사이트인 "트레이드 윈도"를 검색하다 눈에 번쩍 띄는 인콰이어리를 받았다.

거래실적이 전혀 없는 알제리의 신규 바이어가 컬러TV 3천대(55만달러어치)
를 사고 싶다는 조회를 낸 것이다.

이 대리는 즉각 바이어와 접촉해 가격과 인도조건에 대한 상담에 들어갔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대량구매인 만큼 가격을 깎아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 대리는 현장에서 즉시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통해 본사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했다.

전세계에 있는 TV 판매법인의 목록과 재고현황 가격이 즉시 모니터에 떴다.

시간과 물류비용을 줄이기 위해 공급처를 검색한 결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프랑스 전자판매법인에서 물량을 받는게 유리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바이어와의 상담은 이렇게 단 10분만에 끝났다.

80년대 상사맨은 007 가방으로 상징된다.

이쑤시개에서부터 반도체까지 모든 제품의 카탈로그와 샘플을 들고 다니며
바이어와 1대 1 접촉을 해야 했다.

그러나 90년대 상사맨의 필수품은 노트북이다.

"인터넷만 있으면 세계 어느 곳이라도 빈 손으로 다녀올 수 있게 됐다.
각종 거래선과 지역정보는 물론 금융및 물류정보까지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
있다"(삼성물산 정광헌 부장)

인터넷은 이처럼 수출전선을 무한대로 확대시켜 놓았다.

지역뿐만 아니라 시간과도 경쟁해야 한다.

삼성물산의 경우 지식경영시스템(KMS), 현대종합상사는 "그레이트 21",
(주)대우는 노츠시스템 등 자체 개발한 전세계 네트워크망을 갖추고 있다.

바이어를 현장에서 즉시 만족시켜 주지 못하면 수주는 물건너간다.

인터넷은 기존의 영업방식도 완전히 바꿔 버렸다.

화려한 언어구사력과 탁월한 교섭력을 바탕으로 한 대면 접촉보다는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조달 능력이 우선시된다.

업무처리 방식의 변화는 근무양식도 변화시켰다.

일의 시작과 끝이 인터넷으로 처리된다.

E메일로 회의 일정이나 업무지시, 타 부서의 업무협조 요청은 물론 사적인
약속까지 이뤄진다.

인터넷을 통해 업무처리에 필요한 자료를 찾아 보고서를 만든 뒤 전자결재로
끝낸다.

공지사항이나 복리후생 정보 등 개인적인 업무도 사내 전자게시판을 검색해
읽는다.

E메일로 사내 누구와도 직접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면서 상하관계
보다는 같은 팀원이라는 수평의식이 강조되고 있다.

권위는 직급이 아닌 다양한 경험과 업무처리 능력에서 나온다.

조직의 운영방식도 변하고 있다.

상사의 지시를 고분고분 빈틈없이 처리하는 "예스 맨"은 더이상 환영받지
못한다.

네트워크를 통해 창의적으로 업무를 찾아다니는 조직원이 인정받는 시대다.

모든 업무가 전산화되고 처리과정이 투명해지면서 실적도 정확하게 수치화돼
평가된다.

(주)대우는 분기마다 인터넷 바이어 검색대회를 열고 있다.

지난달 화학본부에서는 고밀도 정밀화학제품인 TMD의 수출가능지역과 단가,
물량, 경쟁업체의 수출상황과 대응책을 묻는 문제가 출제됐다.

인터넷에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대신 샐러리맨의 끈끈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집단문화는 사라진지
오래다.

젊은층은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대화방에서 채팅을 하며 대화를 나눈다.

상사와의 거북한 만남은 사절이다.

시간이 남으면 인터넷으로 주식투자나 어학공부를 하면서 실속을 차리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넷맹 세대"인 중견간부가 받는 스트레스는 크다.

한 종합상사의 김모 부장은 "대화가 단절되면서 인간적인 소외감을 느낄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인터넷은 그러나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돼버렸다.

인사와 조직운영방식, 영업패턴, 교육까지 회사의 모든 부문에서 네트워크가
강조되고 있다.

업무 지시는 물론 상사와 부하직원간의 대화나 토론, 개인적 불만까지도
전자메일을 통하도록 요구받는 시대다.

< 이심기 기자 sg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