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컴팩 HP가 죽어도 국내 PC업체를 추월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유통망 때문입니다. 그게 무너지면 국내 PC업체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정보통신부가 기존 제품의 절반 수준인 90만원대에 초저가 펜티엄급 PC를
선보인다고 발표하자 PC업체 한 관계자는 "국내 PC제조업체와 유통업체에
대한 사형 선고"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같은 반응을 보인 배경에는 기존 시장질서가 무너질 것이란 걱정이 깔려
있다.

정통부 계획대로 초저가 PC가 나온다면 기존 제품은 거의 팔리지 않고
따라서 기존 대리점은 몰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4~5개의 대형 국내 PC업체들은 2백50개부터 1천개에 이르는 전속 대리점을
갖고 있다.

이들의 매출은 대리점 수에 거의 비례한다.

친절한 상담, 발빠른 서비스를 내세우는 이들 대리점이 PC업체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관계자는 "정통부가 이런 계획을 한 배경에 "국내 PC 값이 미국보다
비싼 것은 서비스와 유통망 등에 따른 오버헤드 코스트 때문이다.

그 부분을 정리해 값을 내려보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PC유통망을 통해 신속한 애프터서비스에 나서 소비자들이 PC를
제대로 사용하도록 지원해준 역할을 무시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어떤 이는 "정통부의 발표 시기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계획이 시행되려면 적어도 3개월이 걸리는 데 대기 수요로 인해 그
전까지는 PC시장이 거의 얼어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시장 회복세로 투자를 늘린 PC 부품업체들이 많은데 3개월간의 냉각은
이들에게 치명적이라는 주장이다.

대형 PC업체 관계자들은 대부분 "공식적으로는 "노 코멘트"지만 이런 조건
으로는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 삼보컴퓨터 대우통신 LG-IBM 현대멀티캡등 대형 PC업체 가운데
"참여하겠다"고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곳은 한곳 뿐이다.

하지만 정통부 관계자의 말은 다르다.

"업체 관계자 회의에서는 다들 "곤란하다"고 말하고는 나중에 제품 규격과
가격표까지 들고 와 의논을 한다. 실제 7~8개 업체가 참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정통부가 구상하는 가격대 제품이 이미 팔리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
계획이 전혀 무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한 업체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단 시행되면 빠질 수는 없지만 누구도 먼저
나서기는 곤란한 형편"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다른 관계자는 "큰 업체는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 심각한 건 중소업체"
라고 말했다.

용산전자상가의 일명 "조립 PC"업체들은 이미 정통부에서 제시하는 정도
가격대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엘렉스컴퓨터도 최근 60만원대(모니터
포함시 80만원대)의 펜티엄PC를 내놓았다는 것이다.

대형업체에 대항해온 이들의 최대 무기는 싼 가격.

그런데 우체국이 나서서 대형업체가 만든 초저가 PC를 판매한다면 누가
조립 PC를 찾겠냐는 것이다.

그런데 기존 제품도 팔리도록 병행안을 내놓는다는 계획에 대해서도 이들은
도무지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컴퓨터를 값싸게 대량 공급하는데는 뜻을 같이 하는 정부와 업계가 그
해법을 어떻게 찾을지 두고 볼 일이다.

< 조정애 기자 jcho@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