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대서양쪽 북위15도에서 남위15도 사이에 있는 기니만의 긴
바닷가는 한때 유럽인들의 아프리카에 대한 약탈의 통로로 이용됐다.

이곳의 여러 해안에 붙인 별칭은 유럽인들이 내륙에서 무엇을 주로
가져갔는지를 말해준다.

그들은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의 해안은 "곡물해안", 코트디부아르의 바닷가
는 "상아해안", 가나의 해안은 "황금해안", 토고 베냉 나이지리아의 해안은
"노예해안"이라 불렀다.

기니만은 아프리카의 비참했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이 지역에 남북한보다 면적이 조금 크고(24만여평방km) 인구가 6백50만명인
기니(Guinea)공화국이 있다.

이 나라는 지난 58년 실시한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이를 거부하고 그해 10월에 프랑스 공동체로 부터 이탈, 독립했다.

기니국이 생기기 오래전 이곳 해안에 가장먼저 도달한 유럽인은 15세기에
온 포루투갈인으로 오래동안 이들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가 17세기에는 프랑스와 영국이 이곳을 놓고 다투다가 프랑스가
장악했다.

독립후 철광석 보크사이트 등 지하자원의 개발을 통해 농업중심의 식민지적
경제구조를 벗어나려 애를 썼지만 아직까지도 1인당 국민소득이 5백달러
수준인 빈국이다.

이 나라의 10대 소년 2명이 최근 벨기에 비행기에 숨어들어 유럽으로
밀항하려다 지상 1만m 상공의 강추위에 그만 얼어 죽었다.

그런데 그들 품속에서 발견된 편지가 우리의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아프리카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전쟁과 질병, 가난과 기아에서 허덕이며
교육받을 기회도 없다.

우리가 기댈 곳은 아름다운 유럽뿐이다.

유럽 지도자들의 자비를 기대한다는 내용이다.

즉음으로 전한 편지는 영국 로이드은행총재였던 프랑크스가 지적한
"남북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메시지같다.

그리스의 병사 페이디피데스는 마라톤 전장에서 아데네까지 42km를 달려
승전을 알리고 숨을 거뒀다.

이를 기념해 마라톤 경주가 생겼다.

기니의 두 소년 야긴 코이타와 퐁테 퉁카라의 뜻을 기려 유엔 등이
남북문제 해소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