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허용된 지주회사는 그동안 엄격한 설립요건
때문에 사실상 금지돼 왔다고 할 수 있다.

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주요기업 모두가 현행 요건으로는 지주회사를 설립할
계획이 없다고 응답, 지주회사 설립조항이 사문화되고 있다.

지주회사 설립요건을 완화해 기업구조조정 촉진 및 기업지배구조 선진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재계 입장과 지주회사 설립요건을 완화할 경우 재벌체제가
다욱 강화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지주회사 설립요건 완화에 대한 이성섭 숭실대 교수의 반대론은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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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체제의 문제점은 계열사 경영에서 "자기가 한 일에 자기가 책임을 지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기책임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그것은 무질서가 판치는 정글경제이다.

정글경제에서는 시장메커니즘의 효율성을 기대할 수 없다.

재벌총수가 계열사경영을 지배.통제하는 수단은 계열사간에 내부거래 순환형
상호출자 상호지급보증 그리고 총수전횡형 소유지배구조의 4가지다.

문제는 이 모든 수단이 개별법인체의 독립성 즉 경영권을 위임받은 지배주주
가 경영결과에 대해서 주주에 책임을 진다는 주식회사제도의 근간을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부거래 순환형 상호출자 상호지급보증은 모두 계열사 단위의 독립적
경영을 훼손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계열사 경영권 행사도 주주의 권리가 무시되는 여건에서 실질적으로 총수의
전횡으로 모든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경영성과에 대한 책임은 총수의 허수아비 대리인 격인 고용사장이
지고 있다.

총수는 군림하나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는 한 계열사가 높은 수익성을 달성해도 그 수익이 다른 계열사
에 무단으로 전용되기 때문에 그 계열사 주주들의 재산권이 임의로 훼손
당하게 된다.

어느 투자가가 그런 회사의 주식을 장기 보유하고자 하겠는가.

또한 계열사간에 멋대로 교차보조를 하다 보니 사업성 전망이 밝은 회사와
그렇지 못한 회사간에 구분이 서질 않는다.

사업성이 있는 회사나 그렇지 못한 회사간에 주식가격에 차이가 나질 않게
된다.

이런 여건에서 직접금융시장의 육성은 불가능하다.

지주회사제도가 이러한 재벌체제의 병폐를 가중시키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계열사의 독립경영체제가 실현되도록 재벌개혁이 이룩되지 않은 채
지주회사제도가 도입된다면 그것은 과거 재벌회장의 기획조정실 기능을
되풀이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그나마 진행되고 있는 직접금융시장의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9일자 ).